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7화 파혼

월희성. 대학교를 졸업한 뒤 심가희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차곡차곡 모은 장학금과 건축 설계 공모전에서 받은 우승 상금으로 계약금을 냈다. 아버지는 매달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느라 고생할 게 뻔하다며,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일시금으로 결제해준다고 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그 당시 했던 멘트도 기억이 났다. “아빠, 건축 디자이너 수입 무시하지 마세요. 잘만 하면 조기 상환도 가능해요.” 나중에 관련 업계에 종사하지 못했을뿐더러 곽도현의 비서로 3년을 일하며 이사까지 했다. 비록 집을 비워두었지만 가끔 청소 업체를 불러 관리해왔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파 간단히 요리해서 먹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심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내일 집에 갈게요.” “그래, 도현이 시간 난대?” 심우진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새엄마한테 너희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해달라고 할 테니까 일찍 와.” 그동안 본가에 가는 날은 늘 곽도현의 일정에 맞췄고, 둘이 함께 가는 게 당연했기에 1년에 한두 번 겨우 갈까 말까 했다. “네, 알았어요.” 심가희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전화로 설명하기 힘든 일도 있으니까. 곽도현이 파혼을 원하지 않는 이상 아버지에게 말해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어른들끼리 정한 혼사이니 당사자가 나서면 곽도현도 쉽게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 다음 날 점심. 별장에 들어서자 아버지와 계모 온주연, 이복 남동생 심재호, 그리고 이복 여동생 심설아가 현관에 나와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녀를 보더니 심우진이 뒤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너 혼자 왔니? 도현이는?” “아마 바쁠 거예요.” 심가희가 말했다. 최유진을 찾아간 이상 달래주느라 급급할 테니까. “음식 한 상 가득 차려놨는데 사위가 안 올 거면 미리 말이라도 했어야지.” 옆에 있던 온주연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했건만 고작 이 계집애 하나를 위해서였다니. “언니는 항상 형부랑 같이 왔잖아. 형부도 없는데 굳이 혼자 올 필요 있어?” 심설아는 입을 삐죽였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네가 직접 전화라도 해볼래?” 심가희가 비아냥거렸다. 그녀의 속셈을 어찌 모르겠는가? 곽도현과 약혼하기 전부터 잘 보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다만 곽도현이 늘 선을 그었을 뿐이다. 약혼녀조차 찬밥 신세인데 심설아는 오죽하겠는가. “아빠, 언니 봐봐요. 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속마음이 들키자 그녀는 잽싸게 심우진에게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이때, 심재호가 다가와 심가희 손에 들린 영양제와 과일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큰누나가 와서 너무 좋아요.” 비록 온주연의 배에서 나온 아들이지만 성격은 모녀와 완전히 달랐다. 심가희는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고 누나로 대해준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곽도현이 없으니 식사도 금방 끝났다. 거실에서 심우진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가희야, 요즘 도현이랑 잘 지내지? 시집에 다녀갔어? 어르신이랑 도현이 부모님께 내 안부도 좀 전하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다들 잘 지내고 계세요.” 심가희는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 저... 아직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직접적으로 말하면 아버지가 충격받을까 봐 돌려서 말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상업계를 주름잡았던 인물답게 딸의 말속에 감춰진 의미를 단번에 눈치챘다. “혹시 도현이랑 싸웠어?” 심우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부부끼리 의견 충돌은 불가피한 거야. 도현은 곽성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잖니. 일이 바쁜 건 네가 좀 이해해 줘야지.” 누가 봐도 곽도현은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듯했고, 심가희도 역시 그밖에 몰랐다. 그래서 언젠가 헤어질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불쾌한 일이 있다고 해도 그저 사소한 다툼쯤으로 여겼다. 심가희는 옷자락을 꼭 쥐었다.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 다음 달 결혼식, 취소하고 싶어요.” 심우진은 똑바로 앉으며 물었다. “뭐라고?” 옆에 앉아 있던 온주연 모녀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놀라긴 했으나 심설아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저랑 같이 할아버지 댁에 가서 다음 달 결혼식을 취소하자고 말씀해주셨으면 해요.” 심가희는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까만 해도 온화하던 심우진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사소한 다툼으로 파혼하겠다고? 결혼이 장난 같아? 언제부터 그렇게 철이 없어졌어?” 심가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다툰 게 아니에요. 아빠, 우리 사이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겼어요. 전...” “얼마나 심각하길래 같이 못 산다는 거야!” 심우진이 책상을 쾅 내리치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노발대발하는 남편을 보자 온주연이 서둘러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시켰다. “뭐 그렇게 화를 내요. 몸 망치겠어요. 결혼까지 취소할 정도면 두 사람 사이에 진짜 큰일이 있었던 거겠죠. 인연이 아닌데 억지로 밀어붙이지 마요. 같이 가서...”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심우진이 버럭 외치자 온주연은 깜짝 놀라 찍소리도 못했다. “가희야.” 그는 최대한 감정을 눌러 담으며 딸을 바라봤다. “곽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 너도 잘 알잖니. 네 마음대로 결혼식을 취소할 수 있을 것 같아? 혼자 살겠다고 가족을 등지면 되겠어? 한창 잘 나갔을 때랑 다르다고.” 아빠가 아직도 옛날처럼 잘 나가는 줄 알아? 곽씨 가문은 해운시 재벌 중에서도 그야말로 최정점에 있는 집안이다. 반면, 한때 번영했던 심씨 가문은 예전만 못한 상황이며 지위가 훨씬 더 낮았다. “넌 항상 말 잘 듣는 아이였잖니. 아빠 좀 생각해 줘. 그리고 가족들도.” 심우진이 간절하게 말했다. 한층 누그러진 말투에 심가희는 의아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면 아버지는 무조건 들어줄 거로 믿었는데... “만약 곽도현이 잘못을 했다면요?”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