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0화 그 남자부터 정리해요

하지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강태훈이 아닌, 그의 비서였다. 살짝 실망한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채, 하윤슬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강 대표님의 동창인 하윤슬이라고 합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강 대표님께 제가 연락드렸다고 꼭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전달할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뇨,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녀는 문득 어머니가 그날 건물 위에서 몸을 던졌던 순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방이 꽉 막혀버린 듯,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는 정말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병원의 밤공기는 유독 차가웠다. 보호자용 간이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선잠에 빠져 있던 하윤슬은 이내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머니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이불을 다시 곱게 여며주었다. 그 사이, 휴대폰에는 수십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모두 강주하가 보낸 메시지였다. [윤슬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랑 엄마한테 부탁했는데 추가로 4천만 원 더 빌려줄 수 있대! 그러면 지금까지 모은 돈이 8천만 원이야! 내일은 다른 친구들한테도 연락해 볼게. 분명 모을 수 있어!] [나 진짜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있어. 제발 답장 좀 줘!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지금 어디야? 나 거의 부모님 댁에 도착했어! 지금 9천만 원까지 모였어!] 하윤슬은 황급히 중환자실을 빠져나와 강주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진짜 사람 깜짝 놀라게 하려고 작정했어?” “미안해. 아까 중환자실 안에 있어서 핸드폰 무음으로 해놨어...” “나는 진짜 네가 이상한 생각 할까 봐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제발 포기하지 마.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누가 그랬잖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고.” 그 말에 하윤슬이 겨우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으려던 순간, 그녀의 시야에 병원 복도 건너편에 서 있는 커다란 그림자가 들어왔다. 귓가에선 여전히 강주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윤슬아, 왜 말이 없어?” 그때였다. 그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말 한마디 없이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툭 하고 걸쳐주었다. “밤바람이 차요.” 낯익고도 차분한 그 목소리와 그녀를 꿰뚫어 보듯 깊은 눈동자에 하윤슬은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윤슬아? 누구야? 남자 목소리 들리는데...” “여기 잠깐 일이 생겨서...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그녀는 서둘러 둘러댄 뒤 전화를 끊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하윤슬 씨가 절 찾았잖아요.” 하윤슬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잔뜩 말라붙은 입술을 적시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맞아요. 제가 그랬었죠...” 하지만 막상 말문을 열고 보니,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고 그런 그녀와는 달리, 강태훈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물었다. “생각은 정리됐어요?” 그 물음에 하윤슬은 눈을 곧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결혼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강 대표님, 그 부탁 들어드릴게요. 대신... 제발,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강태훈은 한 번도 그녀가 이렇게 당황해하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럼, 남자친구는요?” “...” “저는 내연남이 될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까 그 남자부터 정리하세요. 지금, 당장.” 하윤슬은 하마터면 ‘애초에 남자친구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낮에 그를 밀어냈던 의도가 들통날 게 뻔했고 자신이 장난치듯 그를 이용한 거라 오해할까 두려웠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는 곧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당장 헤어질게요.” “좋아요. 그리고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 같이 혼인 신고하러 갑시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