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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함께 잠든다는 것

밖에서 전화를 마친 강태훈이 고개를 들었을 때에야, 하윤슬은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가게 주인도 강주 사람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하윤슬은 예상과 달리 무덤덤한 그의 말투에 살짝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내가 중학교 시절 짝꿍이었다는 걸 기억한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그의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하윤슬은 자꾸만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깔끔한 고급 정장 차림에 걸음걸이 하나, 시선 하나까지도 자신감으로 빛나는 강태훈은 누가 봐도 유능하고 단단해 보였고 반면 자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내기 티가 역력한 평범한 차림이었다. 그와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쩔 수 없이 뚜렷한 격차가 느껴졌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자, 하윤슬은 더욱 어색해져 몸 둘 바를 몰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해야 하지... 설마 중학교 때 얘기 꺼내서 옛 추억이나 팔아야 하나?’ 잔뜩 긴장한 채 말 한마디 없이 앉아 있는 그녀와 달리, 강태훈은 매일 마주하는 사람과 식사하는 듯 태연했고 셔츠 소매를 느긋하게 정리한 뒤, 조용히 종업원을 불러 몇 가지 요리를 침착하게 주문했다. “하영 그룹 프로젝트는 윤슬 씨가 맡고 있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하윤슬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제가 맡았습니다.” “그 회사 재무 자료는 제대로 검토해 봤어요?” 그가 등을 의자에 살짝 기대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꼼꼼히 봤어요. 제출된 재무 자료는 모두 실제 데이터였고 제가 일일이 대조해서 확인했습니다. 허위는 없었어요.” 강태훈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테이블 위의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하윤슬 씨, 데이터에 허위가 없다고 해서, 재무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네?” 당황한 하윤슬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천천히 서류 한 장을 꺼내 그녀 앞에 내밀었다. “하영 그룹 계좌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 자산은 고작 백억이에요. 그런데 자본금 보증서엔 160억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그 차액을 누가 채울 거라고 생각해요?” “...” “프로젝트는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닙니다.” 그의 말투는 며칠 전 진성호를 단호하게 질책하던 그것과는 전혀 달랐고, 오히려 은근한 충고처럼 다정한 기색이 감돌았다. 하윤슬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의 안일함이 부끄럽기도 했고 동시에 강태훈의 냉철한 분석력에 다시금 감탄이 나왔다. ‘제출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런 허점을 바로 짚어내다니...’ 그의 말이 마음에 박히자 도무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윤슬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로 돌아가 하영 그룹에 대한 실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강태훈은 막 서빙된 음식을 그녀의 밥그릇에 덜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식사하죠. 우리에겐 오늘 밤 내내 시간이 있으니까요.” ‘오늘 밤 내내라니?’ 하윤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저... 오늘 밤, 같이 있어야 하나요?” 강태훈은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래야 내일 아침 바로 혼인 신고하러 갈 수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요...” 그녀는 테이블 아래로 두 손을 꽉 쥐고 용기를 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혼인신고하고 나면 정말 같이 살아야 하나요?” ‘같은 집, 같은 침대, 정말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럼, 따로 살아요?” 그는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선 그가 의료진을 수소문하고 수술비와 치료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 모든 대가로 단순한 서류상 결혼만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문득 강주하의 말이 떠올랐다. “남자란 다 거기서 거기야. 넌 너무 순진한 거지.” “무슨 문제 있어요?” “아뇨.” “그래요. 많이 먹어요.” 다정한 목소리 목소리와 음식을 덜어주는 손길은 마치 곧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처럼 보여졌지만, 마음이 무거워진 하윤슬은 결국 밥에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후 그의 차가 강태훈의 집을 향해 달려갈수록 그녀의 심장은 점점 더 조여왔고, 불안감은 점점 더 짙어졌다. 조수석에 앉은 강태훈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비서와 통화를 이어갔고, 통화를 마무리하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이따가 콘돔 몇 박스 사서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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