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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 여자는 대체품일 뿐이야

그의 싸늘하고도 단호한 한마디는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래, 내가 뭘 믿고 감히 기대를 했던 걸까? 단지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대출 신청서를 기꺼이 받아줄 거라 확신했던 건가?’ 하윤슬은 중요한 걸 잊을 뻔했다. 그는 돈을 지불한 사람이었고 이건 어디까지나 철저한 ‘거래’였다. 감정을 기대고 들이미는 순간, 먼저 선을 넘은 쪽은 그녀 자신이었다. “아닙니다. 죄송해요, 대표님. 괜한 폐만 끼쳤네요.” 그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그녀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주제넘다’는 네 글자가 날 선 채 뺨을 후려치는 듯, 가슴을 찌르며 아프게 파고들었다. 사무실 밖에서는 이미 진성호 과장도 그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얼굴에 화가 잔뜩 서린 그는 문을 벌컥 열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뭐랬어? 안 된다고 했잖아! 하윤슬, 대체 넌 뭔데 날 또 믿어달라고 해? 내가 한 번 믿어줬더니, 그 결과가 이거야? 응?!” 그의 고함이 사무실을 가득 울리자 강주하가 서류를 안은 채 다급히 뛰어와 하윤슬 앞을 막아섰다. “진 과장님, 하윤슬 씨 어머님 지금 병원에 계세요. 그러니, 조금만 너그러이 봐주시면 안 될까요?” “봐달라고? 그럼 나는? 나는 도대체 누가 봐주는데!” 진성호는 책상을 쾅 내리치며 더 큰 소리로 고함쳤다. “좋아. 하윤슬, 너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하영그룹 프로젝트, 그거 네가 나한테 사정사정해서 맡은 거잖아. 근데 지금까지 시작도 못 했잖아? 그럼 짐 싸서 나가는 게 맞는 거 아니야?!” 강주하가 뭔가 반박하려 하자 하윤슬이 그녀의 팔을 가만히 붙잡고 말렸다. 그러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깊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하영 그룹 프로젝트, 반드시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또 큰소리나 치지 마!” 진성호는 이를 악물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고 강주하가 더 화난 얼굴로 외쳤다. “저런 인간 무서워할 거 하나도 없어! 진짜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때려치우면 돼. 나도 같이 나갈 거니까!” “괜찮아.” 하윤슬은 길게 숨을 들이쉬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이 프로젝트, 따내고야 말겠어.” “그래, 나도 도와줄게.” 강주하가 말을 덧붙이려던 찰나, 사무실 내선 전화벨이 울렸다. 하윤슬이 수화기를 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윤슬 씨, 대표님께서 사무실로 잠깐 오시래요.” ‘출장에서 돌아온 거야?’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하윤슬은 곧 표정을 지운 채 대표실 앞에 섰다. 그녀는 이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태훈은 그녀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줄 이유도, 그럴 책임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런 감정을 품을 자격조차 없는 위치였다. 똑똑.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자, 뜻밖에도 문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자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하윤슬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강태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와인잔을 손에 든 한 여인이 우아하게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그 여자는 단순히 외모만 화려한 게 아니었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여유, 그리고 선천적인 듯한 우아함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연보라빛 맞춤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몸짓 하나에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났고 이상하리만치 그 분위기는 강태훈과 꼭 닮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 보였다. “누구...” 그 여인 또한 놀란 눈으로 하윤슬을 바라보았다. “투자 3팀의 하윤슬입니다. 강 대표님께서 부르셔서 왔습니다.” 하윤슬은 시선을 살짝 거두고 예의를 지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아...” 여자는 곧 표정을 풀며 대표실 안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강 대표님, 안에서 옷 갈아입고 계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윤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방 안에서 들려온 건, 얼음처럼 싸늘하고 낯선 강태훈의 목소리였다. “그 여자는 그저 대체품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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