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널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야
“나연아, 미안해. 이젠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 인생은 너무 짧고 나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 옆에서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너랑 성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축복할게. 백년해로하길 바라고 나도 언젠가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해.”
“아니야... 거짓말이야. 당신 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 왜 나를 속여?”
이나연의 눈물은 끊어진 진주알처럼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고 입술을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왜 너를 속이겠어?”
박재혁의 목소리는 차갑고 씁쓸했다.
“나연아, 난 그냥 너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 말에 이나연은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뭉개지는 고통, 무뎌진 칼로 천천히 베이는 듯한 숨조차 쉴 수 없는 통증이 엄습했다.
박재혁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지금도 이렇게까지 그를 사랑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나연은 자신이 어떻게 병원을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 났고 그저 머릿속에 박재혁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그리고 그는 진짜 사랑을 찾고 싶다고 했으니 이나연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를 붙잡지 않고 보내주는 거였다.
이나연은 넋이 나간 채 지팡이를 짚으며 거리를 떠돌았다. 그런데 그녀는 누군가가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쫓고 있다는 걸 몰랐다.
이나연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한 대의 검은 차량이 망설임 없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이나연, 그냥 죽어버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가희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녀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고 얼굴엔 과거의 상처 자국들이 뒤엉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쿵.
곧 이나연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낙엽처럼 힘없이 떨어졌다. 아스팔트 위로 피가 번졌고 이가희는 다시 차를 돌려 이나연을 깔아뭉개려 했지만 멀리서 고현준이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오는 걸 보자 재빨리 방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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