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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진정 좀 해요. 아직 환자잖아요.” 성보람은 좋은 마음으로 배선우를 부축하려 했지만 배선우는 버럭 화를 내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꺼져. 내일 당장 이혼 서류를 너희 집에 보낼 테니까 사인해.” “알았어요. 그럼 먼저 가볼게요. 아, 그리고 돈부터 내 계좌로 입금하는 거 잊지 말아요. 돈 받으면 사인할게요.” 성보람도 계속 화만 내는 배선우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잘생긴 건 사실이지만 잘생긴 사람은 TV나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한 푼도 빼놓지 않고 다 줄 테니까.” 배선우의 눈빛에 경멸이 가득했다. 성씨 가문도 형편이 나쁘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돈에 환장한 딸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솔직히 말해서 이건 거래예요. 선우 씨랑 결혼했다가 아무 이득도 없이 이혼녀 딱지만 붙일 수는 없잖아요. 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보살도 아니고 누가 힘들다고 해서 액운을 쫓아주는 사람도 아니에요.” 말을 마친 성보람은 배선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덩이를 툭툭 털고 미련 없이 떠났다. 그녀가 나간 후 배선우가 병실 안의 물건들을 바닥에 던져버린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병실로 들어온 비서 양대은은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평소 냉정하고 침착하던 배선우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사모님이 뭐라 하셨기에 이렇게 화나신 거야?’ “이혼 합의서 준비해. 그 여자랑 이혼할 거야.” 배선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양대은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그날 배정헌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순이 넘은 배정헌은 다시 몸을 이끌고 병원에 왔다. “너 보람이랑 이혼하면 안 돼.” “전 그 여자가 싫어요.” 배선우는 혐오감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결혼하고 싶으면 아버지나 하세요.” 그 말에 배정헌은 당장이라도 그를 지팡이로 때려죽일 기세였다. “도사님께서 말씀하셨어. 보람이는 너랑 성씨 가문에 복을 가져다주고 네 인생이 평탄하게 풀리도록 해준다고.” “그렇게 미신을 믿으시면 저 그냥 출가해서 스님이라도 될까요?” 배선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성씨 가문에서 그 도사한테 돈 준 거 아니에요? 한번 알아보세요.” “그런데 그때 당시 네가 거의 죽을 뻔했던 건 사실이잖아. 의사도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결혼하자마자 바로 깨어났어. 그러니 도사님 말씀을 믿을 만하지.” 배정헌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혼했다간 네 형한테 그 여자의 치료를 중단하라고 할 거야.” 배선우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차가워졌다. “아버지...” “농담 아니야. 네 형의 의술이 어떤지 잘 알지? 만약 네 형이 치료를 중단하면 그 여자는 영영 치료 못 받아.” 배정헌은 아들의 분노에 찬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협박했다. 부자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봤다. 결국 배선우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요. 이혼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그 여자를 받아들이거나 좋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래. 네가 한 말 꼭 지키길 바랄게.” 배정헌은 콧방귀를 뀌고는 그제야 우쭐거리면서 지팡이를 짚고 떠났다. ‘감히 아버지 말을 거역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 성씨 저택. 성보람은 한복을 벗고 평소 입는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저녁 무렵 성범철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양복 상의를 벗어 방희진에게 건네주면서 약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벌써 돌아왔어? 설마 배선우 걔...” “아저씨, 배선우가 어젯밤에 깨어났어요. 병원으로 옮겨 검사했더니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더라고요.” 성보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아침에 저를 보자마자 당장 이혼하자면서 난리를 쳤어요. 계속 이대로 지내다가는 제가 성씨 가문의 큰딸이 아니라는 게 들통날까 봐 이혼하자고 했어요. 내일 아침에 이혼 합의서를 보내겠대요.” 성범철은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말했다. “어쩜 이런 일이 다 있어? 전에 내가 들은 건 배선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던데.” “우리 보람이 팔자가 좋아서 그런 거죠.” 방희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팔자가 좋긴 하지. 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술주정뱅이 친아버지처럼 어디서 굴러다니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 성범철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하더니 방희진을 흘겨봤다. 방희진은 고개만 푹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보람이 친어머니를 위해 나서서 한마디 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저랑 엄마한테 가정을 만들어주신 건 맞지만 그동안 엄마도 아저씨를 위해 내조를 정성껏 하셨고 집안도 깔끔하게 관리하셨어요. 엄마도 정말 고생하셨다고요.” “고생?” 성범철은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다. “매일 집에 처박혀서 청소나 하고 밥이나 하는 사람이 뭐가 힘들어?” 성보람이 반박하려는데 방희진이 그녀를 붙잡고 제발 그만하라는 눈빛으로 애원했다. 성범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배선우가 너랑 이혼하겠다고 했지? 차라리 잘됐어. 배씨 가문에서 민서를 며느리로 들이기로 한 것도 내 전처 때문이었어. 만약 네가 술주정뱅이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면 우리 집안도 곤란해져.” “아저씨, 그럼 제 예물 4백억은...” 성보람은 말을 하다 말고 성범철을 쳐다보았다. 전에 배씨 가문에서 보낸 예물이 모두 성범철의 손에 들어갔다. 성범철의 눈에 탐욕이 스쳤다. “네 엄마랑 상의해봤는데 아직 어린 너한테 그 큰돈을 쥐여주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저씨가 먼저 관리하기로 했어. 전에 여행 가고 싶다고 했지? 6백만 원 줄 테니까 이혼한 후에 여행이나 다녀와. 그 돈이면 충분할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4백억 원이 6백만 원으로 바뀌었다. 성보람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왔다. ‘욕심이 정말 엄청나구나.’ “아저씨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도 이젠 스물두 살이에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재테크도 잘했고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럼 이렇게 하죠. 아저씨 덕분에 4백억 원이 생겼으니 이 돈은 우리가 함께 번 걸로 치고 저한테 백억만 주세요. 나머지는 아저씨가 다 가지시고요.” 성보람은 아깝긴 했지만 잃어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도 이미 계산해 놨다. 여기서 백억 원을 받고 내일 배선우에게서 백억 원을 더 받으면 2백억 원을 모을 수 있었다. “백억?” 성범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린 게 꿈은 아주 야무지구나.” 성보람이 말했다. “사람은 크게 꿈을 꿔야 한다고 아저씨가 말씀하셨잖아요.” 성범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물러설 기색이 없자 실눈을 뜨고 말했다. “보람아,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하는 거야. 우리 성씨 가문이 아니었더라면 네가 배씨 가문에 시집갈 자격이나 있었겠어?” 이런 말을 들어도 성보람은 화를 내지 않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아저씨가 키워준 은혜를 봐서 배선우랑 결혼한 거예요. 제가 이혼녀가 되면 더 이상 가치가 없을 텐데 수중에 돈이라도 있어야 든든하죠. 내일 배선우의 변호사가 왔을 때 제가 성씨 가문의 큰딸이 아니라고 말실수라도 하면...” 성범철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돌아서서 방희진에게 화를 냈다. “네 딸 교육 좀 잘 시켜!” 방희진은 긴장한 나머지 이미 얼굴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성보람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저를 못 말려요.” “감히 날 협박해?” 성범철은 그녀를 잡아먹을 기세로 무섭게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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