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성보람은 순간 멍해졌다. 사실은 정말 그러고 싶었다.
배선우는 감정이 얽히지 않는 결혼을 원했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싸우는 걸 보고 자란 성보람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의 결혼관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모든 전제가 성보람이 진짜 소윤정의 딸이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대역일 뿐이었다.
신분은 낮고 외가는 시골 출신에 친엄마는 거의 가정부처럼 살아왔고 아버지는 매일 술에 절어 사는 사람이었다.
“죄송해요.”
잠시 고민하던 끝에 성보람은 거짓말을 택했다.
“돈이 중요한 건 맞지만 저도 진심 어린 사랑을 원했어요. 처음엔 선우 씨가 만약 병으로 돌아가시면 저는 괘씸하게 굴지도 않고 조용히 위자료 받고 그다음에 진짜 사랑을 찾아볼 생각이었어요. 아직 젊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한 번쯤은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
배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 밤, 그의 자존심은 성보람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아주 잘 알겠네.”
잠시 후,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며 말했다.
“나는 네가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멍청하군.”
‘진짜 감정을 바란다고? 허, 그깟 감정이 대체 뭐라고. 돈이 훨씬 좋지, 야망이 훨씬 낫지.’
배선우는 워낙 바쁜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연애 감정에 휘둘리며 사는 건 그에게 있어 몹시 귀찮고, 번거롭고, 무엇보다 시간 낭비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와는 생각하는 세계가 다르니 억지로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성보람은 그의 마지막 말에 욱했다.
“제가 사랑받고 싶다고 해서 멍청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럼 세상에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진심 어린 사랑을 원하는 건 다 바보라는 말인가요?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애정 따위는 필요도 없고 그냥 생식 기능만 있으면 된다는 건가요? 혹시 선우 씨가 너무 비정상인 건 아니고요?”
“그건 비정상이 아니라, 특별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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