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어느 날, 하선우는 하루 종일 침실을 떠나지 못했다.
덩그러니 비어 있는 방 한가운데 앉아, 손끝으로 오래전에 빛이 바랜 목도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창밖의 하늘은 서서히 어둑해지고 해가 질 녘의 빛이 유리창을 통과해 바닥 위에 노랗게 번졌다.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하선우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민설아의 모습이 문득 겹쳤다.
민설아는 연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군인 아파트 마당의 큰 나무 아래 서 있곤 했다.
손에는 얇은 잡지를 들고 있었고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민설아의 어깨와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조용한 눈매, 세상과 한 뼘쯤 떨어져 있는 듯한 고요한 표정...
그게 바로 민설아였다.
그날이 하선우가 처음 민설아를 본 순간이었다.
5년 전.
하선우는 막 대령으로 승진해 부대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멀리서 보니 젊은 장교들이 한 여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장난을 치며 말을 걸어대며 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설아는 그 중심에 서서 잔잔한 미소만 띤 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표정이었다.
“저 여자는 누구예요?”
하선우가 호위병에게 묻자, 상대는 작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국군위문예술단에 파견 나온 민설아 씨요. 글 잘 쓰기로 유명한 대학생인데, 잡지에도 많이 실렸대요. 민설아 씨한테 고백한 사람도 많은데 다 거절했다더라고요. 꽤 눈이 높은가 보죠.”
호위병의 마지막 말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하선우의 시선은 이미 멀어진 민설아의 뒷모습을 끝까지 따라가고 있었다.
그 뒤로 하선우는 민설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민설아는 단지 예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글에는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고, 사소한 일에도 조용히 마음을 써 줄 줄 아는 여자였다.
남몰래 민설아가 쓴 모든 글을 구해 읽었고, 글마다 묻어 있는 단정한 온기가 가슴 을 자꾸만 두드렸다.
그러다 하선우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 민설아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국군위문예술단 공연이 있으면 첫째 줄에 앉았고, 민설아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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