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3화

하선우는 원래 강서진부터 진정시키고 그다음에 민설아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득은 시작도 못 했는데 민설아가 너무도 담담하게 허락해 버렸다. “설아야, 역시 넌 생각이 깊어.” 하선우는 안도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잠시 뜸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형수님이 막 퇴원해서 혼자 두기엔 좀 그렇잖아. 우리 집으로 모셔 오면 어떨까 해서...” “여기는 방이 많잖아.” 민설아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어디든 형수님이 편한 방 쓰게 해.” 그런데도 하선우의 표정은 오히려 더 난처해졌다. 입술을 누르며 눈을 피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아야... 내 말은 형수님이... 나랑 같은 방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래.” 민설아는 고개를 번쩍 들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선우를 바라봤다. “설아야, 너도 알잖아.” 하선우는 민설아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형수님이 빨리 임신하려면... 매일 밤 나랑 함께 있어야 하니까.” 하선우는 말끝을 흐렸지만 의도는 너무도 분명했다. 민설아의 손바닥에 박힌 손톱자국이 시퍼렇게 되었지만 가슴을 조이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강서진을 집 안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매일 밤 둘이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 모습을 민설아에게 보면서 살라는 거였다. 하선우는 민설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걸 보고 급히 변명했다. “나도 이 상황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래. 형수님이 임신만 하면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잖아.” “알겠어.” 민설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날 밤, 하선우와 강서진은 대놓고 안방으로 들어갔고 민설아는 바로 옆 객실로 밀려났다. 몰래 만날 때는 조심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숨길 필요도 없었다. 민망할 만큼 생생한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선우 씨, 천천히...” “조금만 참아요... 금방 끝날 거예요.” 침대가 흔들리는 소리, 거친 숨소리, 낮게 터지는 신음이 터졌고 민설아는 아무리 이불을 뒤집어써도 모두 귀속으로 파고들었다. 문득 두 사람의 첫날밤이 떠올랐다. “괜찮아? 아파?” 그날 하선우는 민설아가 아플까 봐 몇 번이고 물었다. 지금의 하선우는 그 다정함을 다른 여자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베개는 눈물로 흠뻑 젖었지만 민설아는 끝내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이 감기려던 순간이었다. “쿵쿵쿵!”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민설아가 비틀거리며 나가자, 문 앞에는 꽃무늬 치마를 입은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서진아, 문 열어봐! 좋은 사람 데려왔어!” 그 뒤에는 짐을 잔뜩 든 젊은 남자가 아부 섞인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민설아가 놀랄 틈도 없이 옆 방문이 확 열렸다. 겉옷만 걸친 강서진이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세요?” “아이고 서진아, 젊은 나이에 과부로 사는 게 말이 되나. 집안이 좋은 총각 데려왔어. 얼른 다시 시집가면 되지!” 안숙희는 뒤에 서 있던 남자를 앞으로 내세웠다. “이분은 이준철 씨라고 해. 살림살이도 갖춰져 있고, 사람도 곧고. 게다가 준철 씨도 얼마 전에 아내를 먼저 보냈어. 너한테는 딱 맞지.” 이준철은 군말 없이 앞으로 나오며 활짝 웃었다. “서진 씨, 안녕하세요?” 강서진이 말문을 열려던 바로 그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퍽!” 그 순간, 하선우의 주먹이 이준철의 코를 강타했다. 그러자 바로 피가 쏟아졌다. “형수님은 재혼할 필요 없어요. 당장 꺼지세요.” 얼음처럼 차가운 하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안숙희는 기겁했다. “아이고 하 대령님, 이게 무슨... 왜 주먹부터 쓰시는 거예요?” 하지만 하선우는 안숙희의 말을 듣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선물 꾸러미를 집어 이준철과 함께 문밖으로 내던졌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또 오면 가만 안 둘 겁니다.” 그러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집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민설아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장면은 너무나 익숙했다. 작년, 군부대 연합 행사에서 한 남자 군인이 민설아에게 춤을 추자고 요청하자 하선우가 달려와 똑같이 주먹을 날렸었다. 그러고는 민설아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 여자는 누구도 건드리면 안 돼.” 그런데 하선우는 지금 강서진을 위해서 같은 눈빛과 같은 분노를 쏟아붓고 있었다. ‘정말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 과연 아이만 낳으려는 사이일 뿐일까? 아니면 선우 씨는 마음이 이미 기울어 버린 걸까?’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민설아는 아프지도 않았다. 그때 강서진이 웃으며 하선우의 소매를 슬쩍 잡았고 눈동자에는 자신감에 가까운 빛이 스쳤다. “선우 씨는 저랑 엮이기 싫다더니... 아까 누가 저한테 혼담 들고 오니까 왜 그렇게 흥분한 거예요?” 강서진이 살짝 몸을 기울였다. “설마... 저한테 마음이 생긴 건 아니죠?”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