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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박지연의 말대로 소이현은 몇 년간 종적을 감추었던 레이싱 선수 썬이었다. 어머니의 사고 이후 소이현은 마음속의 슬픔을 해소할 길이 없어 온갖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져들었다. 오직 몸이 극한의 속도에 지배될 때에야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아드레날린이 샘솟아 심장이 격렬하게 뛰곤 했다. 레이싱은 그녀가 시도했던 익스트림 스포츠 중 하나일 뿐이었다. 소이현이 레이싱을 했던 이유는 단지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함이었기에 경기에 참여할 생각도, 얼굴을 드러낼 생각도 전혀 없었다. 하여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있는 지하 세계에서만 레이싱을 즐겼다. 지하 세계에서는 신분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쩌면 소이현에게 레이싱에 대한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력이 빠르게 늘었고 대회에 몇 번 참가한 후에는 상당수의 팬을 확보했다. 그 후 한 대회에서 정식 레이싱 대회의 기록까지 경신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이 소식이 퍼지면서 썬이라는 이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팬층도 더욱 두터워졌다. 강지유 역시 그 무렵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소이현은 명예를 얻기 위해 레이싱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자 오히려 흥미를 잃고 다른 익스트림 스포츠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경기 중 속도에 지배당하던 쾌감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다만 이젠 모두 과거일 뿐이었다. 소이현이 주의를 주었다. “나 이제 은퇴했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말할 건데? 날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박지연이 가끔 장난기가 발동한다는 걸 소이현은 잘 알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텐데, 뭐. 설령 믿는다 해도 다시 경기에 나갈 생각 없어.” 사람들이 레이싱 때문에 그녀를 좋아했을지는 몰라도 레이싱은 그녀의 삶에서 사소한 부분일 뿐이었고 취미라고도 할 수 없는 기술에 불과했다. 박지연은 더 이상 소이현을 놀리지 않고 진지하게 쳐다봤다. 소이현은 그녀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세련된 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대부분 여성을 ‘부드럽다’거나 ‘꽃 같다’고 묘사하지만 연구실에 있던 소이현의 외모와 분위기는 차갑고 날카로워서 되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요즘 말로 하면 지적이고 스마트한 분위기였다. 그녀를 보면 여자들도 ‘자기야’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멋있었다. 박지연이 처음 소이현을 만났을 때 그녀의 세련된 외모와 공격적인 기세에 깊이 매료되어 먼저 다가갔다가 절친이 되었다. 처음에는 박지연이 ‘구애하는 쪽’이었다. 그때 트랙을 질주하는 소이현의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가슴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소이현은 그 정도로 빛나는 사람이었다. 박지연은 자유와 스릴을 추구하는 강지유가 경기장의 소이현에게 매료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간의 결혼 생활은 그녀를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다... 박지연이 한탄하듯 말했다. “하긴. 누가 나한테 네가 바로 그때 경기장을 휩쓸었던 썬이라고 하면 나도 못 믿을 것 같아.” 그러고는 소이현의 팔짱을 꼈다. “그런데 네가 썬이 아니라고 해도 날 완전히 사로잡았어. 널 처음 본 순간에 너한테 빠져들었거든.” 박지연이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강지유가 뭐라고 하든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게.” 과거 강지유의 말에 영향을 받았던 이유가 강도훈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 그녀를 좋아해 주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이젠 강도훈을 포기했기에 강지유 따위는 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박지연이 말했다. “그냥 위로해주고 싶었어.” 소이현이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계속 위로해줘, 그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이따가 그분을 만났다가 심기라도 건드리면 큰일이잖아. 그러면 감당 못 해, 나.” 소이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을 마친 후 박지연은 초등학교 동창에게 연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성이 도착했다. 여진성은 잘생긴 외모에 키도 185cm로 훤칠했고 맞춤 정장까지 입으니 아주 분위기가 있었다. 격식 있는 차림은 일반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게 하지만 여진성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했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소이현은 그를 보자마자 엘리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성아, 여기.” 박지연이 손을 흔드는 걸 본 여진성이 웃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박지연.” 여진성이 소이현을 보며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소이현 씨. 여진성입니다.” 박지연이 미리 그녀를 소개한 모양이다. 소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박지연이 함께 있어 여진성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옆에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박지연이 말하지 않았다면 소이현은 그들이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사이라는 걸 전혀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사교성이 뛰어났는데 소위 말하는 ‘인사이더’였다. 여진성이 앞쪽의 VVVIP 룸을 가리켰다. “저 따라오세요.” 세 사람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이 룸은 일반 VIP 룸보다 훨씬 넓었고 인테리어도 더욱 고급스러웠다. 각종 오락 시설이 갖춰져 있어 경기가 지루하다 싶으면 오락을 즐겨도 되었다. 소이현은 고개를 들어 룸을 둘러봤다. 룸 안에 기다란 검은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나이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몇 명 앉아 있었다. 그리고 관람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소이현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적인 모임이라 공식적인 모임처럼 북적이지 않았다. 소이현과 박지연이 갑자기 나타났어도 굳이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었다. 박지연의 목적은 분명했다. 거물들은 대회를 즐기러 왔을지 몰라도 그녀는 거물들과 인맥을 쌓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여진성이 모든 걸 알고 있었기에 박지연은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그를 끌고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여진성은 두 미녀의 호위 무사라는 새로운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그가 그녀들을 불렀기에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게다가 어렸을 적처럼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동창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지금까지 다양한 미녀들을 만났지만 소이현을 본 순간 외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처럼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 남자들이 좋아하지만 차일까 봐 감히 고백할 수 없는 차가운 여신 같은 스타일이었다. 그때 경기가 시작된다는 소리와 함께 실내의 대형 스크린에 중계 화면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관람석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다행히 관람석이 넓어서 모두 설 수 있었고 망원경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여진성이 방금 박지연에게 인천의 최고 부자인 서현석을 소개해주자마자 경기가 시작됐다. 그는 서둘러 두 사람을 대표의 옆으로 안내했다. 소이현과 박지연은 일찍이 이쪽 구석에 집중했지만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박지연이 만나고 싶었던 신비로운 그분일 것이다. 여진성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곧이어 소이현은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대부분 한 사람의 뒷모습만 봐도 그 사람의 특별함을 알아볼 수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타고난 기운만으로도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소이현은 문득 이 훤칠하고 엄숙한 뒷모습이 어딘가 낯익은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의아해하던 중 여진성이 외쳤다. “대표님.” 바로 그 순간 남자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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