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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도훈이 말했다. “역시 넌 참 대단해.” 하연서는 그의 두 눈에 짙게 서린 감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강진 그룹과 송도준의 연구실이 협력한 상황에서 송도준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강진 그룹도 자연스레 이득을 볼 것이다. 하연서가 이번에 귀국한 목적은 핵심 기술을 돌파하는 데 결정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예쁜 여자가 먹히는 시대가 아니다. 식사 몇 번으로, 애교를 좀 부린다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여자에게 능력이 있어야 남자도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준다. 하연서는 능력 있는 여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 소이현은 오전 내내 바쁘게 일하다 잠시 탕비실에 들러 동료의 것까지 커피 두 잔을 탔다. 그런데 그때 강도훈의 비서인 장세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세영과는 강도훈의 스케줄을 알아내려고 딱 한 번 연락한 적이 있었다. 소이현은 강도훈과 관련된 누구와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지만 장세영은 싹싹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라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이현 씨, 지금 괜찮으세요?” 장세영의 목소리가 아주 낮았다. “네. 괜찮아요.” 소이현은 그녀가 왜 그렇게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장세영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방금 강 대표님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회사를 둘러보셨는데 회사 전체가 거의 뭐 발칵 뒤집혔어요. 임원들까지 그분을 미래의 사모님으로 여기는 눈치더라고요... 사모님께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여자 이름이 하...” 그런데 그때 장세영의 목소리가 뚝 끊기더니 잠시 후 겁에 질린 말투로 말했다. “허... 비서님. 전...” 모퉁이에 숨어서 통화 중이었는데 허재윤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허재윤은 장세영의 휴대폰을 낚아채 화면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대표님의 스케줄을 물어보던가요?” 장세영은 허재윤의 뒤에 강도훈과 하연서가 서 있는 걸 본 순간 완전히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허재윤이 공적인 태도로 보고했다. “대표님, 소이현 씨입니다. 또다시 대표님의 스케줄을 캐묻고 있었어요.” 허재윤은 소이현이 듣든 말든 상관없는 듯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 소리에 소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허재윤의 모함 따위는 개의치 않았기에 전화를 끊으려는데 강도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경 쓰지 마.” 그녀를 대하는 강도훈의 태도는 늘 이러했다. 소이현은 이젠 놀라지도 않았다. 그는 사실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과거의 소이현이었다면 강도훈이 오해할까 봐, 화날까 봐 어떻게든 해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이혼한 사이라 더 이상 강도훈의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고 그와 하연서의 소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곧이어 강도훈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내일부터 출근 안 해도 돼.” 소이현이 흠칫 놀랐다. ‘장세영 씨를 해고하겠다는 말이야? 그래. 장세영 씨한테 처음 연락했을 때도 해고하겠다고 했었어.’ 그때 소이현이 애원할 정도로 부탁해서야 장세영은 계속 강진 그룹에 남아있을 수 있었고 강도훈은 다음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역시나 다음은 없었다. 강도훈은 그녀에게 조금의 온정도 베풀지 않았다. “도훈아, 비서 하나 때문에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하연서 목소리겠지? 엄청 부드럽고 다정하네.’ 하연서가 그를 달랬다. “이렇게 하자. 이따가 내가 저녁 살 테니까 화 풀어, 응? 내 체면 봐준다 생각하고.” 2초 후 강도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조금 전의 싸늘한 톤과 비교하면 훨씬 부드러웠다. 하연서가 가볍게 웃었다. “가자.” 그 후로 더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이현은 마음속이 씁쓸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지금까지 강도훈을 달래기가 아주 어렵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며칠씩 애써야 겨우 화를 풀곤 했으니까. 그 과정이 소이현에게는 심리적인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강도훈의 화가 풀리기 전까지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으며 다른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연서는 달랐다.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렇게나 쉽다니...’ 허재윤은 통화 중인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소이현이 모두 들었음을 알아챘다. 소이현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다. 장세영이 그녀 때문에 해고당하면 분명히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장세영에게 처벌을 내리긴 했지만 소이현도 심적으로 처벌을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해야만 다음부터 뒤에서 몰래 이런 짓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게 누가 대표님의 일정을 캐고 다니래? 만약 어떤 여자가 날 이렇게까지 감시한다면 너무나 숨 막힐 것 같아.’ 허재윤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퇴사 처리는 오늘 중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래요.” 허재윤은 싸늘하게 대답하고는 휙 가버렸다. 수요일이 하연서의 생일이라 강도훈의 지시대로 라일락 레스토랑으로 가서 가게의 사장과 하연서의 깜짝 생일 파티에 대해 상의해야 했다. 지금 여기서 비서의 퇴사까지 일일이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비서실장은 허재윤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장세영에게 돌려주려다가 화면에 뜬 발신자를 우연히 보고 말았다. [소이현.] 비서실장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몇 초간 생각하고서야 누군가 기억해내고는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 “세영 씨도 참 어리석네요. 그냥 대표님께 도시락이나 가져다주는 도우미인데 왜 이 여자 때문에 대표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그래요?” 강도훈에게 들킨 후 장세영은 겁에 질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이분은... 도우미가 아니라 사모님이세요...” “세영 씨 눈멀었어요? 두 분 커플 반지도 낀 거 못 봤어요? 미래의 사모님은 하연서 씨라고요.” “아니에요...” “그만 얘기하고 빨리 인수인계나 해요.” 장세영은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비서실장이 가고 난 후 휴대폰을 내려다봤는데 뜻밖에도 아직 통화 중이었다.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 씨, 괜찮아요? 방금 한 얘기들 못 들었죠?” 장세영은 소이현이 듣지 않았기를 바랐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말 듣지 말아요. 이현 씨는 도우미가 아니에요... 미안해요, 정말...” 강도훈은 외부에 결혼 사실을 숨겼고 소이현이 그의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이현이 도시락을 가져다줄 때마다 비서가 대신 전달했기에 도우미로 오해받을 만도 했다. 소이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평소 결혼반지를 거의 끼지 않던 강도훈이 하연서와 커플 반지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예상을 빗나갔을 뿐이었다. 강도훈의 손이 참으로 예뻤다. 길고 희며 마디가 뚜렷했고 힘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그 가느다란 약지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이현은 그 손을 오랫동안 훔쳐보곤 했다. 하지만 강도훈이 결혼반지를 낀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액세서리를 끼면 뭔가 구속당하는 느낌 때문에 강도훈이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그저 결혼반지를 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소이현이 말했다. “미안해요. 이젠 세영 씨를 도와줄 힘이 없어요.” 장세영은 소이현과 딱 한 번 대화해봤지만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도훈이 갑자기 다른 여자에게 전례 없이 관심을 보이니 걱정되는 마음에 소이현에게 알려줬던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장세영이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에 제가 말했잖아요. 부모님 일을 도우러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고요. 해고당해도 전혀 속상하지 않아요. 사직서도 벌써 절반 정도 썼다니까요?” 위로하려고 일부러 꾸며낸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후에야 소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장세영의 목소리가 확 낮아졌다. “그런데 대표님은 대체 왜 저러실까요? 사모님은 이현 씨인데 왜 이현 씨한테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이현 씨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건 허락하지 않으면서 아까 그 여자는 함부로 드나들어도 된다고? 대체 왜? 설령 결혼을 숨기고 싶었다 해도 친척이나 친구라고 한마디만 해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현 씨가 힘들게 만든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가져다주기까지 했는데도 문전박대하다니. 대표님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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