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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전화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놀란 건지, 아니면 흥분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이혼해야만 서아현도 정식으로 고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전화를 끊고 거실 소파에 앉아 고수혁이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밤새도록 기다려도 고수혁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고수혁의 비서 조여진이 찾아왔다. 조여진이 집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녀가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고수혁 곁에서 3년간 비서로 일한 조여진이 고수혁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워 피곤에 찌든 내 얼굴을 본 조여진은 마치 승자의 자세로 우쭐대며 말했다. “고 대표님 곁에서 4년이나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는데 서아현 씨가 곧 고씨 가문 사모님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내키지 않은 거죠?”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다고? 흥!’ 사실 나와 고수혁이 결혼한 일은 외부에 철저히 비밀이었다. 4년 전 고씨 집안의 어른들은 신분이 낮은 내가 고수혁과 결혼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올리지 않는 걸로 타협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우리의 결혼 사실을 몰랐다. 그때 고수혁은 안쓰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굳은 결심을 한 듯한 어조로 약속했다. 고성 그룹이 자기 손에 넘어오면 나에게 성대한 결혼식을 선물해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고수혁은 이미 고성 그룹을 손에 거머쥐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약속했던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고수혁 비서의 눈에 나는 그저 고수혁이 키우는 새장 안에 갇힌 새에 불과했다. 조여진이 거만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고 대표님께서 서아현 스캔들을 누가 폭로한 건지 조사해 보라고 해서 확인해 봤는데... 윤세영 씨 회사에서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어요. 윤세영 씨도 회사 편집장이니 모를 리 없겠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작정한 사람들인 만큼 증거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바람을 피웠으면서 설명 한 마디 없더니 이제 와서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난 아니에요.” 그러자 조여진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증거가 이렇게 명백하게 눈앞에 있는데 계속 발뺌할 생각인가요? 윤세영 씨가 인정하든 안 하든, 고 대표님과는 조용히 헤어지는 게 본인에게 좋을 거예요. 개처럼 쫓겨나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으면요!” 조여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순간 멍해진 조여진은 볼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혼 합의서를 조여진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 “고 대표님과 나 사이의 일, 조여진 씨는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어요! 그러니 당장 나가세요!” 이혼 합의서를 본 조여진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하지만 조여진은 자기 대표가 지금은 서아현과 만난다는 걸 떠올린 듯 이를 악물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 대표님이 저한테 전권을 위임했어요. 어제 실검 내용, 윤세영 씨가 퍼뜨린 걸 계속 인정하지 않으면 불상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반성하세요. 반성을 다 할 때까지 자리에서 절대 일어나면 안 돼요! 서아현 씨는 지금도 울고 있으니까요!”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내로남불도 유분수지, 바람은 누가 피우고 반성은 누가 한단 말인가? “뭐 가서 반성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윤세영 씨의 식물인간 어머니가 사용하는 심폐소생 기기는 고성 그룹에서 개발한 거예요. 한 달 후에야 시장에 출시될 예정인데 그동안은 어떡하려고요? 고 대표님은 지금 당장 그 기기를 끌 수 있어요. 그러면 윤세영 씨는 어머니 장례식이나 치르면 되겠네요!” 고수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이 세상에서 나와 피를 나눈 유일한 가족이 우리 엄마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협박하다니... 나는 결국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불당 안에 희미하게 퍼지는 향을 피운 냄새는 고수혁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이 내 주위에 맴돌았다. 순간 고수혁과 반드시 이혼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렇게 뚜렷한 확신이 선 것은 처음이었다. 유영자가 이 광경을 보고 급히 다가와 내 편을 들었다. “조 비서님, 사모님에게 이러시면 안 돼요! 사모님 무릎도 안 좋으신데... 이면시면 정말 안 돼요.” 3년 전 죽은 아이를 출산한 후 고수혁은 냉담한 어조로 나에게 몇 마디 위로를 건넨 후 일이 있다고 하며 자주 출장을 다녔다. 고수혁이 없는 밤마다 나는 불당 앞에 무릎을 꿇고 불상에게 물었다. 내 아이를 돌려줄 수 없겠느냐고... 물론 고수혁은 이 모든 걸 모르고 있었다. 나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매일 불당에 앉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무릎만 꿇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이 생겼다. 당시 장마가 계속된 탓에 나는 결국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조차도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냐고 하며 의아해했다. 또한 이 병은 일단 걸리면 치료가 불가능하기에 비 오는 날에 정말 힘들 경우 진통제를 먹어 통증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유영자는 알고 있었지만 고수혁은 몰랐다. 유영자가 조여진에게 손이야 발이야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더는 참지 못하고 나를 보며 한마디 말했다. “대표님께 전화 드릴게요!” 나는 무릎에서 밀려오는 찌르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주머니, 전화하지 마세요.” 예전에 이런 걸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라도 고수혁이 나 때문에 슬퍼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고수혁은 나를 위해 슬퍼하지 않을 것이니까. 하지만 유영자는 내 말을 듣지 않은 채 제멋대로 고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고수혁이 아닌, 어린 소녀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빠는 방금 엄마랑 같이 옷 사러 가셨어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턴가 고수혁의 휴대폰 잠금 비밀번호가 바뀌어 나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고수혁이 개인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애인과 딸은 마음대로 그의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은 그저 나를 방어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얼굴이 잔뜩 굳어진 유영자는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전화번호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유영자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바로 상황을 이해한 듯 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 무릎에서 피가 흘러나온 후에야 비웃으며 뒤돌아선 조여진은 협박하듯 한마디 했다. “태도가 좋으니까 고 대표님께는 말 안 할게요.” 조여진이 떠난 후 유영자는 급히 나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나는 너무 아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유영자는 나보다 더 화가 난 듯 목멘 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사모님이 여기에서 몇 시간이나 무릎 꿇게 하면서 본인은 한가롭게 다른 여자랑 옷 사러 다니다니... 그리고 그 어린 여자애는... 설마...” 유영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약상자 좀 가져다줄래요?”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고수혁이 돌아온 것이다. 그와 유영자의 대화도 내 귀에 들려왔다. “약상자는 왜 갑자기 꺼냈어요?” 고수혁이 한마디 물었다. “사모님이 불당에서 밤새도록 무릎을 꿇고 계셔서 무릎이 다 상하셨어요.” “고작 그 정도로 무릎이 상했다고요?” 의심하는 어조로 유영자에게 한마디 물은 고수혁은 동정을 얻기 위해 나와 유영자가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유영자가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조 비서가 사모님을 괴롭혔어요. 쿠션을 걷어차 버리는 바람에 사모님이 몇 시간 동안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계셨어요.” 고수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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