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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 사람이 두렵지 않아?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강민지는 팔짱을 낀 채 한껏 우쭐거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소은진, 어때? 고작 하루 만에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민지가 코웃음을 쳤다. “야, 너 때문에 우리 엄마랑 내 동생이 감옥에 갔어. 난 널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게 만들어 줄게.”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먼저 손댄 건 그쪽이야. 감옥 간 건 자업자득이지.” 강민지는 씩 하고 침을 뱉듯 콧소리를 내뱉으며 이를 갈았다. “네까짓 게 뭔데! 넌 죽어도 싸지! 우빈이 말대로 널 창녀로 만들어야 했어. 그럼 이제라도 대접받는 척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지는 못할 테니까!” 나는 말싸움으로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증오했고 나 역시 강민지에 대한 감정은 미움뿐이었다. 말로 오가는 다툼은 서로에 대한 적의만 더 키울 뿐. 그러나 나는 그녀를 방심해선 안 됐다. 강민지가 여기까지 온 건 단순히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녀 뒤에 있는 수많은 건장한 남자들을 본 내 몸속의 경계심은 본능적으로 높아졌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격투기를 배운 적 있지만 상대가 열 명이 넘는 거구의 보디가드들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곧 강민지의 입꼬리가 다시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듯 말했다. “두고 봐. 우리 엄마랑 내 동생? 곧 나올 거야. 진짜 불쌍한 건 너라고.” 강민지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도발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나를 본 강민지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오늘 학교로 돌아가려던 거 아니었어? 왜 안 갔어?” 나는 계속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강민지는 이내 조롱하듯 깔깔 웃었다. “아, 맞다. 너 정신병자잖아. 퇴학도 당했다며?” 그 말투와 표정은 정말 보기 역겨울 정도였다. 소석진. 그는 원래 그런 복잡한 수를 쓸 사람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리력으로 밀어붙이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다. 정신병 진단서를 받아 퇴학시키는 수는 분명 강민지의 머리에서 나온 짓이 뻔했다. 강민지는 코웃음을 치더니 마치 한 맺힌 듯 말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내 체면이 어땠는 줄 알아? 특히 네가 제국대에 붙고 나선 다들 내 욕을 하고, 무시했어. 난 이제 그 인간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네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정신병자가 무슨 대학이야? 당장 병원에나 처박히는 게 맞지!” 강민지의 얼굴이 일그러질수록 나는 점점 불길함을 느꼈다. 이 밤중에 이곳까지 쳐들어온 건 그녀가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강민지의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색은 차디차고 흉측했다. “너 때문에 나랑 석진 오빠는 구치소에 갇혔고 우리 엄마랑 동생은 감옥까지 갔어. 이제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지.”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너야말로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 잊었어? 네가 우리 부모님 사이를 갈라놨고 우리 엄마를 끝내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만든 거. 이건 다 네가 받아야 할 벌이야.” 내 말에 강민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닥쳐! 그러게 누가 이혼을 질질 끌래? 오빠는 이미 네 엄마한테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어. 그렇게 질척거리니까 죽어도 싸지! 안 그래?” 나는 주먹을 꽉 쥐었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강민지는 여전히 소리를 질렀다. “스스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잘 죽었지 뭐! 하루하루 저주했던 인간이었는데 이제 속이 다 시원해!” 강민의 그 한마디에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몇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 바로 앞에 멈춰 서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 강민지는 정말 미친 듯이 웃었다. “왜? 무서워? 나 못 할 말 안 해. 네 엄마? 그년은 그냥 자기 인생 말아먹은 노파였어. 죽었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라!” 파렴치한 말에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 세상에 이렇게까지 악랄한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엄마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강민지는 죽은 사람을 향해 이토록 잔인한 독설을 퍼부었다. 내 엄마는 살아생전 강민지에게 그 어떤 해도 입힌 적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증오를 품는 건가?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눈이 뒤집힌 채, 손을 번쩍 들어 그녀의 뺨을 세차게 갈겼다. “너나 죽어버려!” 강민지는 아마 내가 손을 댈 줄은 예상 못 했던 건지 피하려 했지만 그대로 맞아버렸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고 냉랭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 눈빛은 마치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듯했다. 나는 절대 굴복하지 않고 똑같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보디가드들이 이렇게 많으니 강민지가 화를 내면 결국 손해 보는 건 나일 테니까. 방금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강민지가 계속 돌아가신 엄마를 모욕하는 걸 들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 강민지는 보디가드들에게 곧장 명령했다. “당장 이 사람 묶어!” 나는 불안해져 몰래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별 기대는 없었다. 이미 밤이라 관리사무소엔 당직자밖에 없고 이 상황이 제대로 알려질지 알 수 없었다. 이내 보디가드들이 명령을 듣고 일제히 달려들었고 나는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내 몸놀림은 꽤 빨랐지만 열 명이 넘는 거구의 남자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바로 출구 쪽으로 뛰어갔다. 안타깝게도 그 보디가드들은 내 움직임을 미리 눈치챈 듯, 문을 꽉 막고 있었다. 나는 은밀히 대책을 생각하며 그들과 맞섰다. 역시 전문 보디가드들은 만만치 않았고 곧 나는 바닥에 눌려버렸다. 나는 분명히 알아야 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강민지는 절대 날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우리 집은 26층,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얼마 후, 강민지가 다가와 내 다리를 걷어차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뛰어봐! 어디까지 뛸 수 있을지 지켜보지.” 나는 아픔에 몸이 덜덜 떨렸지만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강민지는 깔깔대며 웃었다. “당연히 너를 죽이는 거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강민지가 정말 끝까지 나를 없애려는 걸까? 그녀의 음흉하고 독한 성격을 생각하면 그런 행동도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스스로 진정시키며 말했다. “네가 농담 하는 거라는 거 알아. 그런데 내가 아빠의 딸인 건 변하지 않아. 네가 나를 죽인다면 다들 아내를 죽이고 딸을 해친 악녀라고 너를 욕할 거야. 그리고 우리 외할아버지 쪽에도 꽤 신임받는 사람들이 많아. 네가 날 죽였다는 걸 알면 분명 너한테 소송도 제기 할 거야. 그럼 너도, 아버지도 내 할아버지 유산은 꿈도 못 꿀 걸.” 내가 유산 얘기를 꺼내자 강민지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비웃으며 말했다. “오빠는 이미 네 할아버지 측 사람들을 회사에서 쫓아냈어. 몇몇은 감옥에도 갔고. 넌 내가 널 무서워 할 거라고 생각해?” 그 말에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벌써 외할아버지 측근을 제거했다는 사실과 외할아버지 재산을 탐내고 내가 정신병자라고 조작한 목적을 한 번에 알게 됐다. 어리석게도 나는 복수와 유산 탈환만 꿈꾸고 있었다. 제국대 의대 합격 후 공부에 몰두하느라 집안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내가 늘 생각했던 건 엄마가 나를 위해서라도 결국 회복할 거라는 믿음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엄마는 끝내 절망에 몰려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갔다. 잘 돌이켜보면 징후는 있었다. 엄마가 자살하기 전 몇 달 동안, 더 이상 히스테릭하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게 내 일상을 챙겼다. 그때 나는 엄마가 마음을 고친 줄 알았다. 사실은 영원히 떠날 준비를 한 것이었는데 나는 너무 순진했다. 내 세계 안에서만 살며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나는 강민지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녀는 나를 증오하고 벌써 나에게 손찌검할 마음을 품었을 거다.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잊지 마. 내 뒤에는 아저씨도 있어. 감히 날 건드리면 아저씨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가 주성훈이라는 사람을 언급하자 강민지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녀는 질투와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이를 갈며 대답했다. “주 대표님은 바빠서 너 같은 걸 돌볼 시간도 없대. 제발 나대지 마!”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저씨가 나를 얼마나 보호했는지 네가 직접 봤잖아. 정말 화낼까 두렵지 않아?” 강민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조금은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주 대표님은 이미 제도로 돌아갔어. 넌 대표님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그리고 증거도 없는데 날 어떻게 하겠어?” 나는 잠시 멈칫했다. 오늘 아침에 헤어질 때 그는 제도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어떡하지? 아예 모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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