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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신 대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가 배승호를 자극했는지도 모른 채 벌벌 떨며 꼼짝도 못 했다. 배승호는 거침없이 돌아섰고, 온채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신 대표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사람들이 다 사라진 뒤에야 등이 땀으로 흥건해진 걸 느꼈다. 망신이 북받치자 조재우에게 말도 없이 변명만 대충 늘어놓고 허둥지둥 달아났다. 다른 사람들도 잇따라 자리를 떴다. 온채하는 조재우에게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타자마자 계약서를 들춰 보며 코웃음을 쳤다. “온 비서, 오늘 꽤 잘했네. 난 온 비서가 상을 뒤집어엎고 튀어 버릴 줄 알았거든.” 누가 봐도 신 대표는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물론 예전 같았으면 온채하도 절대 참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살아남으려면 견뎌야 했다. 전공으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 “대표님, 지금 저 정말 돈이 급해요.” 조재우는 넥타이를 느슨히 풀며 등을 기대고 물었다. “배승호랑은 어떻게 된 거야?”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배승호가 그녀를 달리 대했다. “이혼했어요.” “하, 빅 뉴스네. 예전에 내가 술김에 너한테 키스하려고 했다가, 그 인간 때문에 갈비뼈 세 대가 나가고 배성 그룹에서도 잘린 거 알지? 나 그때 직위도 꽤 높았어. 나를 자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때는 배승호가 친형과 다툼을 벌이던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온채하는 담담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저 때문은 아니었을 거예요.” 조재우는 배성 그룹 관리직까지 올라갔던 사람답게 눈치가 빨랐다. 이 정도 판은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었고, 두 번 다시 실수를 저지를 일도 없었다. 온채하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가는 미친개 같은 배승호에게 뜯겨 가죽까지 벗겨질 테니까. 그는 눈을 감으며 업무를 지시했다.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에 우리 집으로 와서 나 픽업해. 일정표 전부 내 눈에 먼저 보여 주고. 오늘 네 대응 괜찮았어. 면접 때도 눈치챘겠지만 이 자리는 몸값으로 버티는 자리야. 전문성? 별로 안 봐. 대신 네가 당할지 말지는 네 실력에 달렸지.” 온채하가 신 대표를 다룬 방식은 꽤 영리했다. 남자는 아부 몇 마디면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해 영웅심이 폭발한다. 그녀가 계약 문제로 곤란해 보이자 신 대표가 선뜻 사인했던 것처럼 말이다. 40 분 뒤, 차가 조재우의 자택 앞에 멈췄다. 그는 계약서를 챙기며 내렸다. “이 차 내 출퇴근용 차 중 하나야. 나를 안 태울 때는 네가 가끔 써도 돼. 기름값은 회사에 청구하고.” 지난 일과 별개로 조재우는 공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면에서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온채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집으로 들어간 다음에야 차를 돌렸다. 이때 온이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채하야,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안 돌아와?” 멀리서 신우혁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뭐 하러 신경 써? 네 동생 그 집안에서 쫓겨났대. 나 회사에서 다 들었어. 배 대표 옆에 벌써 새 여자가 있다더라. 네 동생도 참 못났어, 그렇게 따라다녔으면서 집 한 채도 못 받았대?” “채하야, 네 형부가 오늘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좀 있었어. 신경 쓰지 마.” 온채하는 이미 온이윤의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연 온이윤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 “감기라도 걸린 거야? 어제 비 맞아서 그런가.” “언니, 나 짐 가지러 왔어. 밖에 방 구해서 나가려고.” “왜 밖에다가 돈을 써. 이 근처 월세 비싸. 그리고 너 돈도 없잖아.” 회사에서 선금 200만 원을 받았으니 일단 호텔에 묵으며 방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온이윤은 조금 더 말리려고 했지만 뒤에서 신우혁이 문을 쾅 닫으며 소리쳤다. “엄마 곧 오신다니까? 남는 방 없어!” 온이윤은 원래부터 집안에서 기가 세지 못했다. 지금도 어색한 듯 웃으며 온채하의 손을 꼭 잡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온채하는 살짝 웃고는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캐리어를 들고나왔다. 어젯밤 올 때도 이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다. 온이윤은 무거운 걸음으로 1층까지 배웅했다. “채하야, 너랑 승호는 더 얘기할 방법이 없는 거야?” 온채하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 얘기는 다 끝났어. 근데 형부가 며칠 뒤 병원 간다고 했던 건 무슨 검사 하러 가는 거야?” 온이윤은 배를 쓸며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2년째 준비 중인데도 아직 소식이 없어. 내 몸에 문제 있는지 보려고.” 시어머니는 아이를 무엇보다 중하게 여겼다. 29살인 온이윤에게 시간은 점점 부담이 됐다. “너랑 승호 사이에 애만 있었어도 지금 이 꼴은 아니었을 텐데.” 온채하는 입꼬리를 애써 올렸다. 그와는 몇 해째 잠자리도 없었으니 임신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배승호는 그녀를 건드리는 것조차 싫어했다. “언니, 나 먼저 갈게. 들어가.” 차에 오른 온채하는 백미러로 언니가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괜스레 가슴이 먹먹했다. 예전, 둘이 마을을 도망쳐 나올 때 그녀는 11살, 온이윤은 14살이었다. 재원시의 빌딩 숲은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 그렇게 오래 발버둥 쳤어도,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생존을 겨우 이어 가는 신세일 뿐이었다. 출발한 지 10분도 채 안 되어 휴대폰이 울렸다. 배승호의 할머니 김연주의 전화였다. “채하야, 이 시간까지 어디에 있는 거야? 할머니가 네 집에서 한참 기다렸어. 승호도 벌써 들어왔어.” 온채하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김연주는 배씨 가문에서 그녀에게 가장 따뜻했던 사람이다. 예전 배씨 가문이 그녀를 양녀로 들인 건 세간의 입을 막으려는 계산이었지만, 김연주는 진심으로 그녀와 배승호의 결혼을 바랐다. 건강이 좋지 않아 늘 약을 달고 사는 김연주에게 자극은 금물이었다. 그 때문에 온채하는 마사지까지 배워 틈날 때마다 저택에 들러 김연주의 혈을 잡아 주고는 했다. 온채하가 목이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자 김연주는 곧장 옆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배승호를 노려봤다. “너 또 채하랑 싸웠니? 그 죽일 놈의 성질머리 좀 고치라니까! 불효자식, 밖에서 떠도는 소문처럼 진여울이랑 바람이라도 피우면 다리몽둥이 분질러 버릴 줄 알아! 콜록, 콜록...” 김연주의 숨이 가빠지자 배승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할머니, 진정하세요. 저 여울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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