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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팀장에게 퇴사 의사를 밝힌 후, 자리로 돌아와 인수인계를 위해 남은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맡고 있던 사건을 인수인계받기로 한 후임은 평소에 나와 가깝게 지냈던 강미진이었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쉽게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듯 아쉬워했다. “언니, 진짜 가는 거예요? 앞으론 그 불륜 남녀가 대놓고 사무실에서 꽁냥대는 거 매일 봐야 하는 거예요? 진짜 짜증 나요...” 강미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송연석이 고유미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있었다. 말투가 살짝 날카로웠던지 고유미가 토라진 듯해 보였다. 그러자 송연석은 어디선가 카르띠에 팔찌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고 고유미는 금세 기분이 풀린 듯 방긋 웃으며 팔찌를 손목에 찼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송연석은 흠칫 놀란 듯 벌떡 일어섰다. 고유미는 주변을 의식하며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변호사님... 오해하는 거 아니죠... 저랑 선배님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아무 의미 없는 팔찌거든요!” 그 한마디에 사무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우리는 5년을 함께한 연인이었지만 송연석은 단 한 번도 내게 이런 값비싼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진 않았으나 다들 내가 시골 출신이라 명품 같은 건 구분도 못 할 거로 생각했다. 그들의 안쓰럽다는 눈빛이 오히려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내 옆에 서 있던 강미진이 분을 참지 못하고 나섰다. “송 변호사님! 아직 언니랑 사귀는 사이인데 이렇게 대놓고 바람을 피워요? 진짜 인간도 아니네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진정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나 때문에 싸움이 날까 싶어 조용히 그녀를 말린 뒤, 고유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팔찌 예뻐요. 유미 씨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내가 화를 내지 않자, 고유미는 오히려 더 당황한 듯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변호사님, 진짜 아무 의미 없는 팔찌예요. 진짜예요. 제발 화내지 마세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화낼 이유가 있을까?’ 카르띠에 팔찌라면 나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단지, 모두 원주 집에 있을 뿐이었다. 내 말을 들은 송연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목소리를 높였다. “유나야, 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 화 안 났어. 그러니까 두 사람이야말로 제발 오해하지 마.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아니라면 말이야.” 차분하게 말하자 송연석은 잠시 멈칫하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냉소를 흘렸다. “그래. 오해 없길 바라.” 송연석은 고유미를 조용히 끌어당겨 자리에 앉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미진이 참지 못하고 나에게 물었다. “언니, 이렇게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나는 말없이 파일을 정리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네. 어차피 저로선 이미 정리한 사이니까요...” 결혼식만 52번을 준비했지만 단 한 번도 끝까지 마친 적이 없었다. 이젠 나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퇴근 후, 송연석이 내 자리로 다가와 정리를 도와주며 말했다. “대충 정리하고 나자. 아레나 레스토랑에 여덟 시로 예약했어. 지금 가면 딱 맞아.” 그러다 내 손목이 말끔히 비어 있는 걸 본 그는 순간 눈빛이 흔들리더니 당황한 듯 물었다. “내가 예전에 준 그 팔찌는? 어디 갔어?” “깨질까 봐 집에 뒀어.” 그제야 그는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 “늘 끼고 다니더니, 갑자기 아껴두고 싶어진 거야?” 뭐라 답할지 망설이던 그때 고유미가 바삐 뛰어와 그의 곁에 섰다. “선배님, 준비됐어요!” 송연석은 고유미에게 곧장 시선을 빼앗겼고 차에서 기다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유미는 당연하다는 듯 조수석 문을 열고 앉았다. 연애 내내, 나는 그 조수석에 단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었다. 송연석은 그 자리는 ‘미래의 아내’를 위해 남겨둔 자리라고 하면서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허락할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고유미가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분명한 도발이었지만, 더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나는 시선을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에 도착한 뒤, 송연석은 아무렇지 않게 고유미와 같은 쪽에 나란히 앉아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게 물어보는 일도 없이 둘이 알아서 주문을 마쳤다. 나는 그게 오히려 편했고 그저 턱을 괴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이런 장면을 다시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음식이 나온 뒤, 송연석은 새삼스럽게 내게 직접 새우를 까서 한 그릇 가득 건넸다. “여기 새우 맛 괜찮더라.” 고개를 들자, 그가 조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내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 의외였다. 그 순간, 고유미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변호사님, 제가 추천한 곳이에요. 지난번에도 선배님이랑 왔었는데, 그때 혼자 새우 세 접시나 드셨거든요!” 송연석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그걸 왜 유나 앞에서 얘기하는 거야...” 고유미는 입을 가리며 웃다가 금세 실수라도 했다는 듯 반성하는 투로 말했다. “죄송해요! 변호사님...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선배님 오해하면 안 되는데...” 둘은 내 앞에서 또다시 소란스레 웃고 떠들었다. 나는 앞에 놓인 새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구역질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한 입 겨우 넘긴 뒤 그릇을 밀어냈다. “난 별로네. 유미 씨 많이 드세요.” 그제야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멎었다. 송연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기분 상했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비린내가 심하네. 생선이나 해물은 별로라고 했었잖아.” ‘너희랑 똑같이 비린내 진동하네.’ 식사를 마친 뒤, 송연석은 술에 취한 고유미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두 사람을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아 문을 닫은 건 나였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송연석이 카톡에서 다음 결혼식을 어떻게 준비할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뭔가 미안했던 건지, 자기가 직접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이번엔 꼭 멋진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할게.] 난 아무런 표정 없이 답장을 보냈다. [그래.]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산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탑승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그가 또 메시지를 보냈다. [유미 씨가 속이 안 좋대. 옆에서 지켜봐야겠어.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갈게. 혼자 잘 자.] 이 또한 예상한 일이었기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네가 유미 씨네 집에서 지내든 말든 이제 나랑은 아무 상관 없어. 난 짐 다 챙겨서 나왔어. 우리 앞으로 다시는 엮일 일 없을 거야.] [송연석,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그렇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고 그의 연락처를 차단한 후 삭제했다. 비행기에 올라타고 보니, 창밖으로 보이는 서원시가 오늘따라 아름다웠다. 그 반짝이는 도시를 뒤로한 채 나는 단념했다. 같은 시각, 송연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완전히 얼어붙은 채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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