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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녀의 낯선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친 순간 도서찬은 자기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의 눈앞에 하루 전날 만났던 황노을의 모습이 떠올랐다. 온화하고 순수했으며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활짝 핀 백합 같았다. 지금 눈앞의 여자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쩌면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이유로 분위기에서 약간의 유사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도서찬은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곡은 연서가 이미 샀고 가격도 연이 씨가 원하는 만큼 드렸습니다.” 도서찬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 연서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황노을이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곡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됐습니다.” 도서찬이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이 깊어졌다. “방금 한 말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황노을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도서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녀는 그가 복도 끝까지 걸어가 한연서를 부축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소중한 보물이라도 대하듯이 애지중지했다. 두 사람이 떠나고 몇 분 후 황노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도서찬의 문자였다. [할아버지께는 네가 어제 몸이 안 좋아서 못 왔다고 했어. 이번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랑 본가에 가야 해.] 이건 그의 명령이었다. ‘허...’ 황노을은 답장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한편 도서찬은 한연서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준 후 바로 출발하지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황노을은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도서찬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연서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빠, 내가 이러는 거 혹시... 싫어?” 그는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고 한연서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물어?” 한연서가 씁쓸하게 웃더니 잠깐 멈칫했다가 이어 말했다. “노을 씨 예전에 음악가였잖아. 혹시 오빠가 신경 쓸까 봐.” 도서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연서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약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한연서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 6개월 동안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최대한 들어주고 싶었다. 한연서는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숙이면서 더욱 미안한 척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차 안에 도서찬이 왼손으로 핸들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1분쯤 지난 후 한연서가 입을 열었다. “난 노을 씨가 걸어왔던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어. 그래야 오빠가 노을 씨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알지.”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도서찬을 쳐다봤다. “오빠가 노을 씨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도 똑같게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핸들을 두드리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난 이미 걔랑 이혼 신청까지 했고 조정 기간이 끝나면 바로 이혼할 거야. 연서야, 난 지금 너랑 함께 있어.” 한연서는 그제야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그만 가자.” 도서찬은 핸드폰을 넣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고개를 숙인 한연서의 두 눈에 의기양양함이 스쳤다. ‘온 국민이 나를 응원할 때 반드시 황노을의 자리를 빼앗고 말 거야. 남자든 일이든 싹 다 짓밟아버릴 거라고.’ 이것이 바로 음악 예능 프로그램 [신의 목소리]에 반드시 출연해야 하는 이유였다. 황노을을 완전히 짓밟아버릴 것이고 가능하다면 이 도시를 떠나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황노을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지금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 아주 쉽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던 한연서는 웃음을 참고 병약한 척 눈을 감았다. ... 한편 황노을은 주민재와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주성 엔터테인먼트가 [신의 목소리]에 투자했기에 대표인 주민재에게도 발언권이 있었다. 한연서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알게 된 후 주민재는 황노을과 비밀 유지 계약 체결했다. 황노을은 가면을 쓴 특별 참가자로 출연하게 됐고 ‘이나’라는 예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과 신분을 알릴 생각이었다. 가면을 벗기 전까지는 황노을과 주민재만 정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음악 예능 프로그램은 작곡, 작사, 그리고 가창력에 집중하므로 가면을 쓰는 건 단지 홍보 수단일 뿐이었다. 다른 소속사에서도 어느 정도 홍보 요소를 추가했기에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황노을은 이나라는 예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밝고 따뜻한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모든 절차를 마친 후 그녀는 직접 운전하여 병원으로 향했다. 오전에 의사와 진료 시간을 미뤘기에 지금 가면 시간이 딱 맞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의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똑똑. 가볍게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황노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의사 라소린이 상냥하게 물었다. “오늘은 전과 좀 다르네요? 요즘은 기분이 어떠세요?” 라소린은 황노을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주치의였다. 황노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행복했던 시간, 고통스러웠던 시간, 기복이 심했던 시간 모두 겪어봤다. 20여 년간 고통도 있었으나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한연서가 등장한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연서가 다른 번호로 황노을에게 문자를 보내기 전에 사실 그녀는 이미 뭔가 감지하고 있었다. 황노을은 그 문자를 도서찬에게 보여줬지만 그는 그녀가 일부러 한연서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날 황노을은 정신과를 찾았다. 첫 진료 기록에 중증 우울증으로 기록됐다. 의사는 약물치료를 권했지만 황노을은 아이를 원했던 터라 정기적인 심리 상담만 받고 약물치료는 하지 않았다. 도서찬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녀가 병원에 다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전보다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황노을이 잠깐 생각하다가 또 말했다. “어떤 일을 내려놓기로 했거든요. 그러면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생활은 어떠신가요?” 라소린이 계속 물었다. 그녀는 황노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한연서의 라이브 방송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있었다. 하여 겉으로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도서찬이 황노을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황노을은 의사의 흰색 책상을 내려다보며 약 3초간 망설이다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별로 좋지 않아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꾹 참았다. “선생님, 저 결심했어요. 약물치료 받을게요.” 전에는 도서찬에게 기대가 있었고 그와 아이를 갖고 싶었기에 상담 치료만 받았었다. 이젠 그도, 아이도 원하지 않았다. 하여 약물치료를 받기로 했다. 라소린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황노을을 쳐다봤다. ‘노을 씨 상태가 더 심각해졌어. 가족인 도서찬 씨한테 알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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