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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여경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황노을을 쳐다봤다. 황노을이 배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봐요. 괜찮으세요? 네?” 여경이 옆 사람에게 다급하게 뭐라 말했다. 황노을은 아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유산기가 있었는데 조금 전 주차장에서 차를 피하려고 뛰고 구르고 또 차 안에서 검은 차에 부딪히기까지 했으니... 아이를 이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황노을은 갑자기 두려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순간 아이를 잃을까 봐 너무나 무서웠다. 쾅쾅쾅. “이봐요. 괜찮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여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눈앞이 캄캄해진 황노을은 고통을 참으며 겨우 문을 열었다. 그런데 열자마자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한편 도경 그룹 건물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고 도서찬이 한 프로젝트를 처리하고 있었다. 오늘 회의가 여러 개 있었는데 많은 사안에 대해 그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오후부터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계속 업무에만 몰두했다. 그의 안색이 점점 굳어지자 거대한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도서찬은 들고 있는 보고서를 보며 왼손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이 프로젝트를 책임진 부장이 누구죠?”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극도의 위압감을 담고 있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접... 접니다.” 한 중년 남자가 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도서찬은 그를 보면서 짧게 말했다. “설명해보세요.” 중년 남자는 다시 땀을 닦았다. “그... 그게... 그러니까...” 중년 남자는 한참을 설명했지만 결국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둘러대며 때로는 이런 이유, 때로는 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망쳐버렸다. “그만해요.” 상대가 더 말하기 전에 도서찬이 입을 열었다. 중년 남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가 애원하듯 말했다. “대표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세요. 이번에는 꼭 잘할 수 있습니다.” 도서찬이 미간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비서 권민서는 바로 이해하고 그에게 말했다. “부장님,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할 땐 아주 거창하게 만들어서 제출하더니 지금 이 결과가 생긴 게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저는...” 중년 남자가 또 변명하려 하자 권민서가 차갑게 가로챘다. “변명하지 마세요. 도경 그룹의 지원을 받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어요. 실패한 원인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중년 남자가 계속 발버둥 치려 하자 도서찬이 서류 한 장을 그의 앞에 던졌다. “이 작은 프로젝트에 횡령을 이렇게나 많이 했어요?” 도서찬이 싸늘하게 말했다. 서류를 본 순간 중년 남자의 안색이 잿빛이 되었다. 덜덜 떨면서 뭔가 말하려는데 권민서가 손을 휘저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도경 그룹 내부 감사 담당자들이 들어와 그를 끌고 나갔다. “대표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중년 남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멀어지는 동시에 회의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도서찬은 차가운 눈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한 사람을 벌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경고를 주려는 목적이 달성된 셈이었다. “회의 여기까지 하죠.” 그러고는 회의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권민서는 도서찬을 따라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 도서찬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쉬는 걸 보고는 즉시 부하 직원에게 커피 한 잔을 타오라고 했다. 도서찬은 미간을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했다. 지나치게 엄격하면 따르는 사람이 없고 거대한 도경 그룹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요즘 들어 유난히 피로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 테이블 위에 뭔가를 내려놓았다. “서찬 씨, 따뜻한 차 한잔 마셔요. 밤이 깊었어요. 업무 처리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챙겨야죠. 이거 꽃차라서 심신을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도서찬은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나타난 건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권민서였다. 고개를 숙여 보니 테이블 위에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도서찬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대표님, 커피 싫으세요?” 그의 기분을 눈치챈 권민서가 바로 물었다. 도서찬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사실 그도 이 복잡한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평소에는 사모님께서 따뜻한 차를 타주셨는데.” 권민서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사모님이 타주시는 꽃차를 찾지 못해서요. 대표님이 피곤해 보이셔서 어쩔 수 없이 커피라도...” 그렇다. 평소에는 황노을이 그의 곁을 지켰었다. 눈을 감자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사모님께 전화해서 여쭤볼까요?” 권민서가 떠보듯 물었다. “필요 없어.” 도서찬이 답했다. 권민서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사무실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도서찬은 사무실이 이토록 조용하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고 마음속에 답답함이 치밀었다. “이번 달 왜 이렇지?” 도서찬이 침묵을 깼다. “대표님, 업무량 말씀이십니까?” 권민서가 물었다. “응.” 권민서가 낮게 답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오늘 진 부장의 횡령 같은 작은 문제들은 아래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사모님께서 먼저 해결하셨고 좀 더 중요한 일들만 대표님께 보고가 되었기에...” 도서찬이 눈을 뜨고 권민서를 쳐다봤다. 그러자 권민서는 그의 생각을 알아챈 듯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도서찬도 딱히 뭐라 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내저었다. “퀸즈 그룹과의 계약서는 어디에 있어?” 권민서가 고개를 더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래 직원들이 아직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도서찬은 한숨을 내쉬고는 권민서더러 그만 나가라고 손짓했다. 권민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둘러 나갔다. 그는 닫힌 사무실 문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황노을과 이혼 신청을 급하게 한 바람에 예전에 그녀가 맡았던 많은 업무들을 제대로 인수인계하지 못했다는 것을. 사무실이 무척이나 고요했고 시계 돌아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공기 중에 커피 특유의 씁쓸한 향기가 감돌았다. 천천히 피어오르는 커피의 뜨거운 김에 도서찬은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전에 황노을에게 주말에 본가로 가자고 했던 문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답장하지 않았다. 황노을에게 전화를 걸어 본가로 가자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했던 황노을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도서찬이 핸드폰을 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 갑자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연서가 웃는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빠.” 한연서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같이 있어 주려고 왔어.” 도서찬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연서는 도서찬의 핸드폰을 힐끗 쳐다봤다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옆에 앉았다. “왜 그래?” 도서찬이 그녀의 감정 변화를 느끼고 물었다. “오빠, 오늘 노을 씨한테 연락이 왔었어?” 한연서가 망설이며 묻자 도서찬은 계속 얘기하라고 눈짓했다. “나 오후에 [신의 목소리]에 출연한다는 내용에 관한 숏츠를 올렸어.” 한연서는 도서찬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노을 씨가 예전에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었을 뿐인데 네티즌들이 듣기 거북한 소리를 하더라고...”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뭇거렸다. “노을 씨 혹시... 오빠한테 따져 묻지는 않았어?” 도서찬이 얼굴을 찌푸렸다. ‘오후?’ 오늘 하루 종일 회의하느라 온라인상의 일을 신경 쓰지 못했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덧 저녁 9시 15분이었다. “한 가지 더 있어...” 한연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8시 45분에 작업실을 나왔는데 그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야. 방금 아래에서 주차하다가 보니까 글쎄 작업실에서 나왔을 때부터 파파라치한테 찍히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 한연서가 미안한 얼굴로 말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도서찬에게 건넸다. 핸드폰에 한연서가 비비안 플라워 스튜디오를 나와 도경 그룹에 들어오는 동선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글까지 덧붙였다. [한연서 늦은 밤에 도경 그룹 건물에 자유롭게 출입, 도서찬과 공개 열애 의혹.] 그리고 밑에 황노을이 곧 차일 거라고 조롱하는 댓글들이 가득했다. “오빠,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부주의했어.” 한연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도서찬은 손을 내저으며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안 그래도 이혼 조정 기간이 끝나면 한연서와의 관계를 공개할 생각이었다. 다만 황노을이... 갑자기 도서찬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시계가 밤 9시 20분을 가리켰다. 도서찬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놀랍게도 발신자가 황노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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