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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임지은이 이혼 접수증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십 년 넘게 우정을 이어온 절친한 친구였고 황노을이 도서찬을 얼마나 미치도록 사랑하는지 쭉 지켜봤었다. 도서찬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년 전 그들이 결혼했을 때 임지은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오랜 소원을 이룬 절친을 진심으로 축하했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임지은이 묻기도 전에 황노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임지은을 보면서 입꼬리를 씩 올렸는데 참으로 예뻤다. 그 순간 임지은은 황씨 가문이 승승장구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세상에 짓밟히지 않았을 때의 부잣집 아가씨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임지은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서찬 씨는 내가 임신한 걸 몰라.” 황노을이 말을 이었다. “이혼 조정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면 안 되니까 그 사람한테도 숨기는 게 나을 것 같아.” 이혼 조정 기간 한쪽이라도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신청을 철회할 수 있고 두 사람은 여전히 혼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 말에 임지은은 황노을이 정말 떠나기로 굳게 결심했음을 깨달았다. 상황을 파악한 후 임지은은 황노을에게 받아야 할 검사들을 알려줬다. “수술은 아무래도 며칠 뒤에 해야 할 것 같아.” “왜?” 황노을이 의아해하며 묻자 임지은이 대답했다. “네 RH-잖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수혈받을 피를 준비해야 하거든. 혈액은행에 전화하니까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된대.” 황노을이 순간 멈칫하더니 두 눈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혈액형이 아버지와 똑같았다. 또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알았어.” 황노을은 마음속 감정을 억누르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산기가 조금 있어. 요 며칠 조심해야 해.” 임지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황노을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기에 황노을이 지금 얼마나 속상할지 임지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임지은이 황노을의 손을 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오늘 오전 근무라서 이따가 퇴근해. 같이 집에 가자.” 황노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깥 복도에서 임지은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배를 내려다봤다. ‘유산기가 있다고? 아이도 내 결정을 알고 먼저 떠나고 싶어 하는 건가?’ 황노을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른 검사를 받으러 갔다. 웅웅. 핸드폰이 진동했는데 은행 계좌 잔액 변동 알림이 떴다. 이 카드는 이혼 조정 기간 도서찬과 재산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새로 만든 은행 계좌였다. 앞으로 황노을의 수입은 모두 이 계좌로 들어올 것이다. 잔액 변동 알림과 함께 새로운 문자도 도착했다. [작곡 작사료 입금 완료되었으니 확인 바랍니다.] 도서찬과 결혼하기 전 황노을은 음악가였다. 그녀는 음악을 사랑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 황노을은 재벌가 딸이었기에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 음악 교육도 받았다. 그 후 파란만장한 삶을 겪으면서 그녀는 삶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한때 취미로 했던 이 재능이 그녀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황노을은 잠깐 생각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답장이 왔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인걸요. 지난 몇 년간 훌륭한 곡들을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복귀할 생각이 정말 없으세요? 최근 작곡가님과 아주 잘 맞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자세한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보세요. 특별 출연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황노을이 메일을 확인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었는데 예전에 봤던 음악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자작곡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았다. 황노을은 다시 답장을 보냈다. [생각해볼게요.]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놨는데 아랫배가 조금 아팠다. 문득 또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였다. ... 한편 인터넷에 핫이슈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연서 위암.] [유명 플로리스트 한연서 시한부.] [인생의 마지막 6개월, 웃으면서 병마와 싸우는 한연서.] ... 조회 수가 가장 높은 영상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유명 플로리스트 한연서 씨가 위암 진단을 받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6개월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마지막 6개월을 네티즌들과 공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상 속에서 한연서는 씁쓸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마지막 6개월 동안 제 인생을 여러분과 공유할 겁니다. 다른 목적은 없고 그냥 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려 하루빨리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기자가 다시 화면에 나타났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한연서 씨와 도경 그룹 대표인 도서찬 씨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돌고 있습니다. 이미 결혼한 도서찬 대표가 한연서 씨에게 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한연서가 기자를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가더니 정중하게 말을 끊고 카메라를 보면서 말했다. “제가 서찬 오빠를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숨길 생각이 없어요. 그분은 훌륭한 분이라 저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전 다른 사람의 결혼 생활에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니까요. 감사합니다.” ... 말을 마친 한연서가 화면에서 물러났고 기자가 계속해서 보도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고 차에 올라타서야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옆에 C국에서 데려온 간병인 김수희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면서 할 얘기가 있는 듯 망설였다. “할 얘기 있으면 해요.” 한연서가 차갑게 말했다. “기사님도 우리 사람이에요.” 간병인 김수희는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서 씨 진단 결과는 위궤양이에요. 우리 요양원에서 위암이라고 조작한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일인데 인터넷 방송까지 하면 어떡해요?” 한연서가 피식 웃었다. 김수희는 그런 그녀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네 요양원은 의료기관 맞죠?” 한연서의 질문에 김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 병력도 병원에서 따로 관리하겠네요?” 김수희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병력에 위암 말기이고 6개월밖에 못 산다는 내용이 적혀 있나요?” 한연서가 또 묻자 김수희는 잠깐 망설이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 한연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진짜니까 조사해도 무서울 게 없어요.” “하지만 연서 씨는 위암이 아니잖아요. 나중에 혹시라도...”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어요.” 한연서는 경고 섞인 눈빛으로 김수희를 쳐다봤다. “하나는 앞으로 당신네 요양원이나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사랑의 기적으로 완치됐다고 하면 돼요. 다른 하나는 당신네 병원에서 오진한 바람에 잘못된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다고 하는 거고요. 이건 명백한 의료 사고죠.” 한연서의 얼굴에 협박의 뜻이 짙어졌다. “어느 해결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김수희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한마디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역시 연서 씨가 생각이 깊으십니다.” 한연서가 코웃음을 쳤다. “연서 씨, 이제 어디로 갈까요?”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김수희가 묻자 한연서는 핸드폰을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도산 병원으로 가요.” 김수희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진통제 처방받으려고 가는 거니까 긴장해 하지 말아요.” 한연서는 도서찬에게 이따가 병원으로 데리러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도서찬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한편 황노을은 병원의 화장실에 있었다. 아랫배가 아팠고 손에는 피가 묻은 휴지를 들고 있었다. 유산 조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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