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놀라움은 잠시일 뿐, 그 뒤에 남은 건 그저 잠잠함뿐이었다.
어젯밤 백유라가 보낸 영상과 사진들, 그 안의 모든 장면은 이미 그녀가 예상했던 현실의 확인일 뿐이었다.
예전의 정해은이라면 분노했을 것이다.
믿지 못해 울고 절망 속에 무너졌을 것이지만 지금의 그녀는 아니었다.
이해하게 된 것이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미움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젠 사랑하지 않으니 상처도 사라졌다.
성수혁이 정해은을 버린 건 어제의 일이고 그녀가 그를 놓는 건 오늘의 선택이었다.
곧,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건 조용히 꽃을 꽂고 있는 정해은의 모습이었다.
흰색에 가까운 옅은 베이지색 롱드레스, 긴 머리는 나무 비녀로 단정히 올려 묶여 있었다.
꾸밈없고 담백한 차림인데 그 단정함이 오히려 차갑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더했다.
“해은아, 좋은 아침이야.”
성수혁은 품에 안고 온 붉은 장미 한 다발을 들어 보였다.
“이거 너 주려고 샀어.”
잘못을 한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의 말과 행동에는 어딘가 과장된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선물로, 온화한 미소로 스스로의 죄책감을 덮으려는 얄팍한 위로.
정해은의 시선이 장미 위에 멈췄다.
선명한 붉은색, 요란한 포장, 그건 백유라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짧고 가벼운 대답이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잘 거야. 우리 이제 너무 오래...”
성수혁을 말끝을 흐렸지만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해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 오늘 밤 집에 안 들어올 거예요.”
그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주연희와 약속이 있었다.
위키 엔터에 들러 마지막 계약 서류를 마무리해야 했고 식사 자리에 회사 임원들도 참석한다고 했다.
사실, 그건 단순한 ‘복귀’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순히 연예계에 들어가려는 게 아니라 직접 투자자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서려는 길이었다.
정해은은 한때 이름난 보석 디자이너였다.
그녀의 디자인은 여러 브랜드에서 경쟁적으로 사 갔고 잡지에 실릴 만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