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그럴 리 있겠습니까. 그저 내 글솜씨가 궁금하다 하시며 노랫말이나 하나 지어 달라 하셨습니다.” 김신재가 답했다. 정소윤은 실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기색 하나, 눈짓 하나에도 그 어떤 유혹도 담기지 않았다. 처음으로 공식 소환한 자리였으니 그저 떠보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어느덧 두 해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 없이 지냈고 이제는 서로 등을 지고 선 셈이었다. 옛날, 후궁 김씨 일가가 반역의 죄로 몰려 참형에 처해졌을 때 칼을 쥔 이는 다름 아닌 강릉 감사였고 김신재 또한 김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줄에 묶일 뻔했다. 그를 감싸안아 구해낸 이가 바로 정소윤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서 김신재가 환관 행세를 하는 까닭을 아는 단 세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 와서 그 인연을 손바닥처럼 털어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덕종은 예전 같지 않다. 몸도 마음도 쇠해져 가는 중이니 말이다. 정소윤 같은 여인이 저리도 혈기 왕성한 사내를 그냥 흘려보낼 리가 없었다. 청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정말이십니까? 숙의 마마께선 가락에도 능하신 분이라 들었는데 두 분의 곡조가 제법 잘 어우러졌을 듯합니다.” “세자빈마마께 염려하지 말라고 전해주시지요. 저는 오직 세자빈마마만을 섬길 생각입니다. 숙의 마마께는 눈길도 주지 않겠습니다.” 김신재가 황급히 덧붙였다. 청이는 비록 나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강청연 곁에서 자란 터라 둘은 자매처럼 각별한 사이였다. 그래서 더 잘 알았다. 이런 얘기는 귓가에 살짝만 불어넣어도 충분하다는걸. “세자빈마마께 마음을 다하는 건 참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숙의 마마께 너무 선을 긋진 마세요. 전하의 눈에 드신 분이니 만일 뜻을 함께할 수 있다면 세자 저하께도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청이가 말했다. 김신재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어찌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다만 세자빈마마께서 시샘하실까 두렵습니다.” “어이쿠, 겨우 환관 하나 두고 시샘을 하시긴요. 마음만 딴 데로 안 가면 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