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윤성이가 무릎 꿇고 민서한테 사과하라고 해도 기꺼이 할걸?”
“...”
다들 나를 맹비난했고 박윤성에게 진짜 화낼 리 없다고 내기까지 걸 기세였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룸 밖을 나섰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하나둘씩 입을 다물고 갑자기 떠나는 내 행동에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박윤성과 이혼하겠다면 저들은 과연 어떤 반응일까?
기분 전환을 위해 바깥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민서가 불쑥 다가왔다.
“지연 씨, 정말 의외네요.”
나는 그녀를 뒤돌아보며 혼자 나온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꼬듯이 물었다.
“내가 그쪽 이렇게 싫어하는데 여기서 확 밀어버릴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봐요?”
조민서가 웃으며 답했다.
“감히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인걸요. 어차피 윤성이는 나부터 구할 거거든요.”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더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때 조민서가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 내기할래요?”
나는 그런 그녀가 참 이상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두 사람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인데 왜 윤성이랑 나랑 이혼하게 부추기지 않았어요? 꼭 다른 사람의 진심을 짓밟고 서로 사랑하는 척 연기해야만 애틋한 사이라고 증명되는 건가요?”
순간 조민서의 안색이 돌변했다.
“이게 다 지연 씨가 지긋지긋하게 매달려서잖아요! 윤성이 붙잡으려고 자살까지 하니까 걔도 측은지심에 남아있는 거라고요!”
곧이어 그녀는 다시 평온함을 되찾고 내게 질문을 건넸다.
“지연 씨, 나랑 내기할 수 있어요?”
수영장은 반짝이는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보기엔 맑아 보여도 실제로는 수심이 매우 깊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왜냐하면 난 수영을 못하니까.
너무 빨리 대답했던 탓일까? 조민서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설령 내가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왜 굳이 목숨까지 걸고 한 남자가 나를 더 사랑하는지 딴 여자를 더 사랑하는지 내기를 해야 하는 걸까?
자살과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두 번 다시 할 필요는 없다.
이제 막 일어서려는 순간 조민서의 음침한 눈빛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 뒤에 서서 내가 떠나려는 바로 그 순간 확 밀쳐냈다.
첨벙.
귓가에 온갖 비명이 들려왔고 내 몸은 수면에 닿더니 곧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사방에서 밀려오는 물에 감각이 잠식되는 공포뿐이었다.
목구멍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폐도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익숙한 그림자가 재빨리 다른 방향으로 헤엄쳐 가는 것만 보았다.
내 남편 박윤성이 나와 조민서가 동시에 물에 빠졌을 때 그녀에게 헤엄쳐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건 아마도 25살의 내게 남은 마지막 감정일 것이다...
과거를 잊고 더는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몸의 본능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완전히 익사하듯이 단념했다.
...
다시 깨났을 때 나는 수영장 옆에 누워 있었다.
나와 조민서는 모두 구조되었지만 그녀는 박윤성이 구했고 나를 구한 건 낯선 남자였다.
그것도 꽤 잘생긴 남자가...
내가 바닥에 누워 있자 그는 두 손으로 내 가슴을 누르며 방금 마신 물을 토해내게 했다.
나는 웩하고 물을 토해냈다.
곁눈질로 보니 박윤성도 이리로 다가왔다.
조민서는 여전히 불쌍한 척하며 스스로 껴안고 아쉬운 듯 박윤성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한편 박윤성은 나라는 와이프가 있다는 걸 방금 떠올린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좀 어때?”
나는 아무 말 없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남자가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곧장 밀쳐냈다. 박윤성이 앞에 다가오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어 가차 없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순간 주위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심지어 모든 이의 떨리는 숨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박윤성, 우리 이혼해.”
한참 후, 나는 싸늘한 침묵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
“이 싸대기는 전 와이프인 내게 주는 위자료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