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수아는 조용히 일어나 방의 불을 켰다. 환한 조명이 방 안을 밝히자 윤시혁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손으로 불빛을 막았다. “시혁 씨, 이 늦은 시간에 어디를 가는 거예요?” 임수아의 질문에 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은채가 아파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그 말에 임수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녀의 예상대로 조금 전에 윤시혁한테 전화를 건 사람은 서은채였다. 임수아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가문의 의사가 있으니 굳이 시혁 씨가 갈 필요 없잖아요.” “서씨 가문의 의사가 어제 휴가를 내어서 당장 돌아올 수 없대. 은채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해.” 윤시혁의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하필 서은채가 아플 때 가문의 의사가 자리를 비운 것이 우연이 아닐 거라고 여겼다.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 서은채가 꾸며낸 일이라고 생각했다. 임수아는 심호흡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문의 의사가 휴가를 냈다고요? 그러면 서씨 가문의 사람이거나 사용인이 서은채 씨를 데리고 병원에 가도 되잖아요. 시혁 씨가 갈 바에는 구급차를 부르는 편이 훨씬 빠를 거예요. 내 말이 틀렸어요?” 윤시혁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직접 가서 봐야 마음이 놓여. 은채의 곁에 내가 있어 줘야 한단 말이야.” 임수아는 화가 나서 손을 덜덜 떨었다. 윤시혁이 서은채를 향한 사랑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서 임수아의 가슴에 꽂혔다. 예전에 임수아가 차에서 뛰어 내려서 다쳤을 때 혼자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윤시혁한테 전화를 걸어서 와달라고 부탁했지만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때 윤시혁이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윤시혁이 두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대하는 모습과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대하는 모습은 정반대였다. 임수아는 윤시혁 앞으로 다가가서 그의 두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시혁 씨,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이 늦은 밤에 전 여자 친구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