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그녀가 뒤돌아서 옷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윤시혁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어젯밤에 서윤미가 나한테 전화했었어. 은채가 고열에 시달려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대. 은채 부모님은 리조트에 가서 연락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해서 병원으로 간 거야.” 그 말에 임수아는 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 어젯밤에 꼭 나가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건가?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안 하던 짓을 하면서 사람 마음을 흔들고 있네.’ 그녀는 윤시혁이 어제 벌어진 상황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의 윤시혁이라면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먼저 임수아한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세를 낮추고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굴었다. 임수아는 윤시혁의 마음속에 그녀의 자리가 조금이나마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러나 연이어 떠오른 일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윤시혁한테 실망스러웠다. 임수아는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그녀는 멈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혁 씨가 소중히 여기는 여자니까 아프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달려갔겠죠.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갔잖아요.” ‘하지만 내가 혼자 병원에 있을 때 전화도 받지 않았지. 더 이상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 그녀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는 옷방으로 들어갔다. 윤시혁은 임수아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녀를 불러세우고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슬픔에 젖은 눈을 한 임수아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아팠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임수아는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윤시혁이 집을 나서려고 할 때 한효진이 그를 불렀다. “시혁아, 수아한테 제대로 사과했지?” 윤시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당하게 물었다. “제가 왜 사과해야죠?” 한효진은 윤시혁을 노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