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강청연의 침궁 깊숙한 곳엔 작은 방 하나가 있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의 하녀방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허나 이 방은 주인의 사사로운 안위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아무 하인이나 감히 머무를 수 없는, 오직 몸 가까이 시중드는 여비만이 거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춘향처럼 신분 낮은 시녀는 그저 침궁 바깥 하인방에나 들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김신재 또한 강청연과 함께 행궁으로 돌아왔는데 사람 눈을 피해 그녀의 마차 안에 숨어들었기에 아무도 감히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차는 행궁의 후원에 멈췄고 날이 어두워진 뒤에야 그는 몰래 몸을 숨겨 청이의 방으로 기어들었다. 그리하여 며칠을 꼼짝 않고 숨어 지냈으니 먹고 자고 입고 씻는 일 모두 청이의 손을 빌렸다. 그렇게 다섯 날을 숨죽여 보냈다. 허나 김신재가 빈둥거리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틈나는 대로 십자연발석궁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사격을 연마하였기에 그 여파로 청이의 베개는 몇 날 안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한편 이무령 또한 깊은 밤을 틈타 칼을 갈며 전투를 준비하였다. 구상철을 베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으니 싸움의 승패는 오롯이 그녀 한 사람에게 달린 형국이었다. 이무열이 없고 김신재는 닭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전장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이 싸움은 오롯이 이무령의 몫이었다. ... 이월 초하루는 흉일이었고 백사에 금기하는 날이라 전해졌다. 하지만 이날은 마침 은화영의 생일이기도 했다. 구상철은 강청연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길일인지 흉일인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진귀한 진수성찬을 들여보냈다. 연제국 백제 어부들이 전날 밤 갓 잡은 참다랑어와 제왕게를 비롯하여 북정 부족이 즐기는 진한 독주까지 두루 갖추어졌다. 이무령은 세 명의 심복을 환관으로 가장시켜 물자를 점검하려 하였으나 구상철이 직접 보낸 주방장이 나서며 막아섰다. “이 식재들은 신선하고 귀한 것이니 행궁의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소. 대장군께서 직접 조리케 하신 명이오.” “그렇다고 해도 우리 또한 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