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아, 저...” 난옥은 잠시 얼어붙었다. 그녀가 다음 채찍을 어디에 내리쳐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쳐라!” 처마 밑에서 심화영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씨 부인이 후작 댁 자손 따위엔 아무 미련 없고, 오히려 남의 집 여식을 감싸겠다는 거라면 우리 심씨 가문에서도 더는 봐줄 필요 없지 않겠나!” 망설이던 고윤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나 화영이가 먼저 나서서 네 배 속 아이를 어찌하려는 게 아니다. 네가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죽을 길을 고른 거지. 오늘 형벌은 송연정에게 내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죄인을 두둔하며 맞겠다 했으니, 너도 받아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난옥이 망설임 없이 채찍을 내리쳤다. “아아악!” 유씨 부인의 비명이 밤하늘을 찢고 울려 퍼졌다. 그녀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대감! 제발 돌아오세요! 대감께서 안 돌아오면 당신 자식이 이 여우 같은 악녀 손에 배 안에서부터 두들겨 맞다 죽게 생겼습니다!” 짝! 짝! 짝! 난옥은 그녀가 뭐라고 떠들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매질은 계속됐고 갈기갈기 찢어진 유씨 부인의 옷 사이로 피가 흘러나와 마당 가득 피 냄새가 돌기 시작했다. 고윤희도 순간 얼굴이 굳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화영아, 혹시 너무 심한 건 아닐까? 그래도 그 배 속엔 네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느냐...” “그 피가 흐른다 한들, 송연정을 감싸는 저 손이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심화영의 눈빛은 차디찬 쇠붙이 같았다. 그녀는 감정 하나 없는 눈빛으로 유씨 부인을 꿰뚫고 있었다. 그녀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연민조차 그 순간 산산이 깨져버렸다. 전생에서도 유씨 부인은 송연정의 말에 휘둘려 그녀더러 혼약을 찢게 했고, 죽음을 앞두고도 입에 거품을 물며 후작 댁을 욕보였다. 그렇게 결국 온 집안이 수치를 뒤집어썼다. 그날, 아버지는 분노 끝에 직접 채찍을 들어 그녀에게 두 대를 내리쳤다. 그때 유씨 부인은 어땠던가? 무릎을 꿇고 조용히 눈물만 훔치며 연약한 척을 했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