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말 그렇게 해버렸다. 주저하지 않고 임정우를 따라갔고 망설임 없이 로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서슴없이 한수호를 떠나버렸다.
마치 한수호가 이서아의 손에 끼워준 결혼반지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하고 그들이 동사무소에 간 건 단지 관광이었으며 부부 관계는 장난처럼 여겨졌다. 이서아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듯이 떠나버렸다.
환기가 안 되는 욕실에는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 차 있었고 한수호는 처음으로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샤워기를 뚝 꺼버리고 한 손으로 벽을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자 한수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임정우만 있다면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도 이서아는 언제나 그를 택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한수호와 임정우 두 사람 모두 학교의 유명 인물들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언제나 임정우만 보였다. 한수호는 그녀가 자신의 앞을 지나쳐 임정우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때마다 이서아는 한수호에게는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임정우를 너무 편애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눈에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임정우가 귀국하자마자 결혼한 사실조차 잊고 그를 따라가 버린 것이다.
이서아는 한수호를 내버려 두고 떠나버렸다.
...
한수호는 몸을 말린 후 가운을 걸치고 나와 와인 진열대에서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상표나 연도는 보지 않고 바로 따서 반 잔을 유리잔에 따른 후, 몇 개의 얼음을 넣었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을 켜지 않은 부엌에 홀로 앉아 한 모금씩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힐끗 보니 강소현이었다. 굳이 받지 않아도 이서아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 뭐가 더 있겠어. 아내가 전 남자친구랑 도망쳤는데.’
한수호는 전화를 바로 끊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유지호였다.
한수호는 전화를 받으며 스피커폰을 켜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유지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