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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집으로 돌아온 한서율은 고열에 시달렸다. 잠에서 깰 때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억눌러왔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의 숨을 옥죄었다. 그동안 민재하는 단 한 걸음도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벽, 그녀의 몸이 오한으로 떨릴 때마다 그는 젖은 수건을 갈아 이마에 조심스레 얹어주었고, 아침이 밝아오면 머리맡에는 늘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녀의 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민재하는 따뜻한 우유를 들고 다가왔다가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이제 좀 괜찮아요?” 한서율은 힘없이 미소 지었다. “네, 괜찮아요.” 그녀는 애써 웃었지만, 민재하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반년 동안 함께 지내며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어젯밤 윤재헌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의 삶에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조용히 비서에게 그녀의 과거를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4년 전, 그녀는 한세린을 대신해 윤재헌과 결혼했다. 그리고 4년 뒤, 그녀가 다시 돌아오면서 모든 지옥이 시작되었다. 민재하는 생각을 정리한 뒤, 책상 위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윤 대표님이 한율그룹을 인수했어요. 그리고 그 회사를... 당신에게 넘기겠다고 하네요.” “됐어요.” 그녀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리며 서류를 밀쳐냈다. “그 사람 이름, 다시는 제 앞에서 꺼내지 마세요.” 민재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가 열에 들떠 중얼거리던 잠꼬대가 떠올랐다. ‘살려줘... 제발, 내가 한 게 아니야...’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녀가 견뎌온 지옥의 잔향이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새처럼 고통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 아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민재하는 서류를 조용히 접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서명하지 마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한율그룹은 완전히 윤재헌의 손에 넘어가게 되겠죠. 그건... 당신 어머니가 남기신 마지막 유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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