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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유재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러다 복도 끝에서 채유진이 뛰어왔다. “선배님! 3번 샘플에 문제 생겼어요!” 유재민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뭔데?” “임계치가 넘어갔어요. 빨리 와 봐요!” 채유진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지만 유재민은 망설이듯 뒤돌아 서나연을 쳐다봤다. “일단 데이터가 급하니까 일 처리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는 기다릴 틈도 주지 않은 채 채유진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서나연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사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유재민에게는 모든 게 다 자신보다 우선일 테니까. 그가 ‘나중에 얘기하자’고 한다는 건 대개 다음은 없다는 뜻이었다. 결혼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유재민은 필요한 돈만 냈을 뿐, 그 외엔 단 한 번도 관여하지 않았다. 마치 통보까지 마쳤으니 자신이 해야 할 몫은 끝난 거라고 생각한 듯 말이다. 집은 이미 중개업자에게 맡겼고 그동안 살던 월세 집도 미리 정리해 둔 터라 잠시 머물 곳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30분 뒤, 서나연은 어느 낡은 아파트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연 사람은 엄마였다. 그녀는 딸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나연아, 갑자기 웬일이야? 재민이는 같이 안 왔어?” 서나연은 말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안 왔어요.” 거실에서는 아버지와 남동생 서동훈이 소파에 파묻혀 TV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재민이는 밑에 주차하러 갔니?” “저희 헤어졌어요.” 짧은 한마디에 공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뭐라고?” 서나연의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헤어졌다고? 그게 뭔 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약혼 취소했고 앞으로 상관없는 사이예요.” 쾅! 큰 소리와 함께 유리로 된 테이블이 넘어지며 위에 있던 접시와 컵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곧, 뜨거운 차가 서나연의 종아리에 쏟아졌고 뜨거운 열기가 피부에 번졌다. “이 정신 나간 년! 내가 너를 괜히 키웠니? 재민이 같은 사람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아? 사람들이 줄 서도 못 잡는 상대를 네가 차 버려?” 아버지의 말에 소파에 기대앉아 있던 서동훈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끼어들었다. “누나, 툭 털어놓고 말 좀 할게. 재민이 형 같은 사람 옆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허투루 살아온 사람 없어.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재민이 형 회사에 채유진이라는 여자 있잖아. 지도교수 딸 맞지? 두 사람이 진짜 잘 어울리는 커플이지.” 서동훈은 서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누나는 그 얼굴 말고 뭐가 있어? 지금까지 재민이 형 옆에 붙어있던 것도 기적이지. 조금만 참고 넘기면 될 걸 왜 취소까지 해? 남자가 바람 좀 피우는 게 뭐 어때서? 지금 와서 헤어지면 내가 받을 돈은? 누나, 지금 누나 손으로 동생의 앞길을 막는 거야?” 서나연은 그 말들을 들으며 세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믿고 있던 돈줄이 끊겼다는 걸 원망하듯 일그러진 얼굴들.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이곳은 포근하고 따뜻한 집이라고 믿고 살았던 곳이었다. 서나연은 이 집에서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비록 그게 억지라도, 거짓이라도 좋으니 벌어온 돈은 대부분 집에 보냈다. 남동생의 비싼 대학 등록금, 부모님이 요구한 용돈, 집을 바꾸겠다며 떠넘긴 계약금. 서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줬지만 그럼에도 속으로 가족에게 조금은 인정받기를 기대했다. 유재민이 결혼을 언급한 순간 가족들의 태도는 즉시 바뀌었다. 부쩍 전화하는 횟수가 늘었고 말투는 부드러워졌으며 가끔은 힘들지 않은지 묻기까지 했다. 그래서 서나연은 늦게나마 그들이 자신에게 애정이 생긴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 허울은 처참하게 벗겨졌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유재민에게서 가져올 이익이었다. 서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리에 뚜렷이 남은 화상을 방치한 채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어딜 나가? 몇 마디 했다고 도망가니? 지금 나갈 거면 다시는 들어오지 마! 누가 너를 사람 취급이나 하는 줄 알아?” 쿵! 서나연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문을 세게 닫았고 그 소리에 낡은 복도의 센서 등은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세상은 넓은데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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