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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나연은 집에서는 남보다 못한 가족이었고 학교에서는 존재감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던 소년이 가장 초라한 순간에 무너져가던 자존심을 붙잡아주었다. 유재민이 아주 작은 ‘빛’을 건네자 서나연은 불나방처럼 그 ‘빛’만 보고 앞으로 향했다. 그 뒤로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고 가까스로 그와 같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여전히 타고난 천재였고 졸업 후에는 연구소 최연소 수석이 되었다. 서나연은 연구소에 이력서를 넣었고 다른 모든 기회와 승진을 포기한 채 그저 유재민의 곁에 서기 위해 버텼다. “서나연?” 이내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가 현실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연구소 내 의사는 서나연의 상처를 소독하고 있었고 유재민은 옆에 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집안 문제는 빨리 정리해. 업무에 영향 주면 안 되니까.” 그 말은 서나연에게 차가운 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그녀를 감싸며 막아섰던 장면으로 마음속에 가느다란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한 마디로 ‘불’은 단번에 꺼졌다. 유재민에게 그 행동은 서나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불필요한 소란을 막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녀는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짧게 대답했다. “응.” 상처 치료가 끝나고 난 뒤, 유재민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오늘 사제 모임이 있어. 같이 가자.” 모임 분위기는 뜨거웠고 주제는 당연히 연구 성과와 이번 프로젝트였다. 채유진은 유재민 옆자리에 앉아 외국에서 보고 들은 걸 신나게 쏟아냈다. 채 교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흐뭇해하며 제일 아끼는 제자와 딸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재민아, 이번에 유진이랑 작업 참 잘했더라. 한 사람은 침착하고 한 사람은 활기 있어서 전문성도 보완되고 성격도 맞잖아. 이제 너도 나이가 있는데 계속 일만 하지 말고 개인적인 것도 생각 좀 해야지. 우리 유진이가 가끔 철이 없어도 마음은 참 착한 아이야.” 의도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몇몇은 유재민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시선을 서나연에게 돌렸다. 그리고 채유진은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아빠를 말리는 척하며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유재민을 올려다보았다. 조금의 정적 후, 유재민이 천천히 대답했다. “저에 대한 관심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젝트가 중요하니 다른 건 아직 생각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유진의 얼굴에서 홍조가 사라지더니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그대로 자리를 뛰쳐나갔다. “유진아!” 채 교수는 갑작스러운 딸의 행동에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유재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수님, 제가 가서 보겠습니다.” 문이 닫히자 남은 사람들 사이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곧, 송하인이 조심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재민 씨는 왜 약혼했다는 말을 안 해? 내가 채 교수님한테 말할까?”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서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작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관계를 남이 대신 말해준다는 건 너무 우스운 일이다.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던 그녀는 속이 뒤틀리며 메슥거려 참을 수 없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지 않고 식당 뒤쪽의 작은 마당으로 나섰다. 저녁 바람은 쌀쌀했지만 서나연은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답답함이 조금씩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나연은 그 장면을 보았다. 꽃잎이 휘날리는 나무 아래, 채유진이 유재민 품에 기대 울고 있는 모습. 게다가 귓가에는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왜 저는 안 돼요? 선배, 저 선배 많이 좋아해요. 저도 알아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 거. 그리고 나연 언니처럼 똑똑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노력할게요. 언니가 할 수 있는 건 다 배울게요.” 유재민은 그녀를 안아주지는 않았지만 자기 품에 안기는 채유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곧, 서나연은 자신이 유재민에게 다가가던 몇 번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유재민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서나연 얼굴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마치 남의 연극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관객처럼. 하지만 꽉 쥔 주먹 탓에 손톱은 손바닥을 파고들고 있었다. 유재민은 서나연이 나타나자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지만 채유진은 그의 품속에서 계속 울먹였다. “제가 선배를 제일 잘 알아요. 선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잘 안다고요.” 서나연은 더 이상 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식당의 룸으로 돌아간 그녀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만 남기고 모임에서 빠졌다. 송하인은 걱정스러운 듯한 시선으로 서나연을 쳐다봤지만 끝내 붙잡지 않았다. 서나연은 혼자 기숙사 복도를 걸었지만 마음속 마지막 잿더미마저 바람에 흩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공허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씻고 자려는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조심스럽게 문을 연 서나연은 유재민이 희미한 복도 불빛 아래 서 있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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