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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한효진의 말은 마치 그들이 돈을 뜯어내려고 찾아온 것처럼 들렸다. 성혜란은 바로 해명했다. “어르신, 한 가족끼리 무슨 치료비 같은 소리를 하세요. 전 그냥 아이를 잘 훈계해 주시고 언니에게 사과하게 해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한효진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임수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아야, 네가 잘했어. 우리 윤씨 가문의 며느리가 억울하게 당할 필요는 없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려야 해! 그래야 앞으로 누가 너를 건드리려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겠지.” 이 말에 모녀의 표정은 정말 볼만 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효진을 바라보았다. 이런 사건에 대해 한효진이 이런 태도를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건 너무 편파적이었다. 임수아는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웃었다. 한효진의 보호는 따뜻한 물줄기처럼 그녀의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전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편에 서서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하경림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한효진의 말이니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자리를 떴다가 돌아올 때 수표를 들고 와 성혜란 앞에 놓았다. 테이블 위의 수표를 보며 성혜란은 침묵했다. 이때 한효진이 다시 말했다. “다른 일 있으신가요?” 이는 곧바로 내쫓으려는 태도였다. 성혜란의 얼굴이 굳었다. 몇 초 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어르신, 사돈,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수표는 도로 가져가세요. 저희는 절대 받을 수 없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임현지를 돌아보았다. “현지야, 가자.” 임현지는 창백한 얼굴로 일어나 한효진과 하경림에게 인사를 한 후 성혜란을 따라 나갔다. “장 집사...” 한효진이 집사를 부르자 집사는 다급하게 들어왔다. 성혜란과 임현지는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집사에게 불려 멈춰 섰다. 집사는 미소를 지으며 수표를 성혜란의 품에 넣어주었다. “저희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돈을 받으시면 이 일은 끝난 거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누구의 입에서도 이 일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마치고 성혜란이 대답하기도 전에 집사는 돌아서서 들어갔다. 수표를 든 성혜란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무슨 치료비야! 솔직히 말해 입막음 비용이지!’ 성혜란은 오늘 이 방문으로 윤씨 가문 사람들이 임수아를 싫어하게 만들고 한효진과 하경림이 임현지를 더 알아봐 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성혜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르신의 마음은 완전 한 쪽으로 치우쳤어! 이렇게까지 해가며 임수아를 편들다니!” 그녀는 임현지를 돌아보며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어르신이 우리 현지를 마음에 들어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쯤 윤씨 가문의 며느리는 우리 현지였을 텐데.” 이 말을 들은 임현지는 눈을 내리감았다. 긴 속눈썹이 그녀의 눈동자를 가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임수아만 이렇게 운이 좋아 어르신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한효진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의 마음은 부러움과 동경, 그리고 임수아에 대한 질투로 가득 찼다. 윤씨 가문의 며느리라면 이런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본가 안에서 하경림은 한효진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임현지가 임수아를 모함했든 안 했든, 일부러 국물로 상대방을 데이게 한 건 잘못이에요. 어머니는...” 한효진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수아는 잘못한 게 없어. 남이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데 반격하지 않고 그대로 참아야 해?” 그녀는 임수아의 손을 잡고 톡톡 두드리며 자상하게 말했다. “수아야, 할머니는 너를 응원해. 우리는 억울하게 참지 않아.” 임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달콤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할머니.” 한효진과 잠시 수다를 나눈 후 임수아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 그녀의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녀는 상상도 못 했다. 성혜란이 직접 찾아와 할머니와 시어머니 앞에서 그녀를 고자질할 줄은. ‘생각해 보지 않은 걸까? 시댁 앞에서 이런 식으로 딸의 험담을 하면 자신의 처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걸. 아니면 사실 이것이 엄마의 목적이었을까?’ 이런 생각에 임수아의 가슴이 쓰라리게 아려왔다. ‘하하, 이런 사람이 바로 나의 친어머니라니.’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참았다. 오후에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전문가가 집으로 찾아와 임수아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했다. 윤시혁은 아래층 소파에 앉아 시계를 보며 잘생긴 얼굴에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집사에게 말했다. “장 집사님, 재촉해 주세요.” 집사는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여성분들은 화장과 스타일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가씨가 내려오시면 분명 도련님을 놀라게 할 거예요.” “쳇.” 윤시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위층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습니다, 아가씨가 내려오십니다.” 윤시혁은 일어나 정장을 다듬고 몸을 돌렸다. 그는 게슴츠레 뜬 눈을 들어 계단에서 내려오는 임수아를 바라보았다. 이 한순간,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임수아는 짙은 파란색의 스트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타이트한 디자인이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피부는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게 빛났다. 드레스 아래로는 곧고 기다란 다리가 드러났다. 그녀의 머리는 탑에 탄탄한 포니테일로 묶였고 양쪽 볼에 내려온 프린세스 컷이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원래의 가르마는 뱅 스타일로 바뀌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작아 보이게 했다. 화장도 정교하게 되어 있었고 왼쪽 눈 아래의 눈물점 옆에 붙은 진주 장식이 포인트가 되어 빛났다.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 밤의 임수아는 정말 아름다웠고 눈부셨다. 임수아는 고개를 들자마자 윤시혁의 시선과 마주쳤다. 오늘의 윤시혁은 더욱 눈부셨다. 핏이 잘 맞는 검은색 정장이 그의 다부진 체격을 한층 더 부각시켰다. 깊고 입체적인 얼굴 윤곽은 마치 대가의 조각가가 정교하게 다듬은 듯 완벽했다. 차가운 눈썹 아래로는 가늘고 긴 눈, 오뚝한 코 아래는 키스하기에 적합해 보이는 얇은 입술이 있었다. 윤시혁이 자신을 계속 바라보자 임수아의 얼굴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윤시혁은 약간 당황했다. 그는 임수아를 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그는 눈살을 더욱 찌푸리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말을 마친 그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문밖으로 나갔다. 연회장으로 가는 길 내내, 임수아와 윤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혜성 호텔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윤시혁은 연회장 입구에 서서야 팔을 구부리며 임수아에게 눈짓했다. 임수아는 그 뜻을 이해하고 그의 팔에 손을 걸었다. 두 사람은 함께 연회장에 들어섰다. 그들이 입장하는 순간,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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