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제수씨, 그때 박씨 가문에서 나올 때 간단한 짐만 챙겼지, 중요한 물건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더라고요.” 박유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송서아의 머릿속에 서재에 있던 물건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몇 달 동안 공들여 그린 유화였다. 그 유화를 위해 그녀는 물감만 구하느라 여러 곳에 부탁해야 했다. 송서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박씨 가문에 가서 가져올게요.” 하지만 송서아는 박유준을 그 유화를 빌미로 삼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제수씨, 이번에 기명 그룹을 도와주면 제가 그 물건들을 송씨 가문에 보내라고 할게요.” 송서아는 천진하지 않았다. 박유준의 말뜻은 분명했는바, 그녀가 돕지 않으면, 반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영영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송서아는 살짝 이를 악물었다. 요즘 박유준의 일 처리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박유준은 송서아를 잘 알고 있었다. 서재에 쌓여 있는 물건들은 그녀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지금 박씨 가문에 있었기에 송서아는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박유준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득을 보고도 뻔뻔하게 말했다. “제수씨, 내가 제수씨를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김해 그룹이 곧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해버리면 모든 게 늦어져 버릴 테니까 그러는 거예요.” 말을 마치고 박유준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커피는 제가 샀으니, 부담 갖지 말아요. 제수씨의 좋은 소식을 기다릴게요.” 박유준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송서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 허가윤은 특실 병실에서 그 사진을 보았다. 그녀의 남편이 송서아의 손목을 잡고, 두 사람이 카페에서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사진이었다.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준 것은 허씨 가문의 재산을 말아먹는 망나니, 허준하였다. 예전에 허씨 가문은 경원시에서 나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허준하가 도박에 빠지면서 가세가 기울어졌다. 도박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