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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결국 진서연은 입을 열어 사과했다. 진서연은 자신의 몸속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배의 상처는 아픔을 넘어 감각이 무뎌졌고 피는 계속 흘렀다. 진서연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문가를 지키는 경호원은 의사와 간호사를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대표님의 명령입니다. 사모님이 사과하시면 그때 의사를 들이랍니다.” 간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바닥에 피가 안 보여요?” “저 정도 출혈이면 사람이 죽어요. 진서연 씨가 당신들의 사모님 아니에요?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경호원은 잠깐 망설이더니 전화를 걸고는 다시 싸늘하게 말했다. “사모님이 사과하기 전에는 누구도 못 들어갑니다. 죽더라도 그건 사모님 본인 선택입니다.” 그 말에 진서연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눈을 떴지만 시야가 흐렸다. 과다 출혈 때문인지 입을 겨우 벌려도 목은 모래를 삼킨 것처럼 메말랐다. 경호원은 보지 못했지만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진서연을 본 간호사가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진서연 씨는 이제 막 출산했어요! 자연분만에서 제왕절개로 이틀 밤낮을 버텼다고요.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저기 봐요, 진서연 씨가 움직여요. 뭐라고 하시는 거 같은데요?” 간호사는 경호원의 소매를 붙잡고, 말을 못 하는 진서연을 가리키며 외쳤다. “사과하시겠대요. 빨리 지혈 좀 하게 들여보내요!”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호원이 이현준에게 알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실신과 각성을 몇 번이나 오간 끝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과하는 태도가 이래?” 그러고는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예린아, 걱정하지 마. 이씨 가문에서 널 억울하게 둘 사람은 없어.” 그와 동시에 얼음 같은 물이 진서연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눈을 뜨니 주예린이 아기를 안고 이현준의 품에 기대선 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진서연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서연은 손을 들어 얼굴을 한 번 훔쳤다. 더는 일어날 힘도 없었기에 바닥에 누운 채 눌러 삼키듯 말했다. “미안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예린이 먼저 서러움을 앞세웠다. “현준 오빠, 됐어요. 형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죠. 게다가... 이런 식의 사과는 저도 받고 싶지 않아요.” 주예린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울컥 목이 메었다. “현민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도 이렇게 오래됐는데... 이제 형님이 집안의 안주인이잖아요. 사과해야 하는 건 오히려 저죠. 형님, 죄송해요. 제가 욕심을 부렸어요. 그때 저도 차라리 현민 오빠를 따라가야 했는데...” 그러자 이현준이 손바닥으로 주예린의 입을 가볍게 막으며 말을 잘랐다. “그만해. 네 이씨 가문의 안주인이야. 단 하나뿐인 안주인이지.” 그 말은 칼끝처럼 진서연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아, 이게 마음이 죽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진서연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 연락처를 지워버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탈출구를 남겨둔 자신이 새삼 고마웠다. “서연아, 예린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 이현준의 목소리가 진서연 마음속의 작은 안도마저 짓밟았다. 결백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으라 하는 격이었다. “예린이는 우리 집에 들어온 뒤 단 한 번도 서러움을 겪은 적이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러니 당장 사과해. 알겠지? 무릎 좀 똑바로 꿇어. 예린이가 만족하면 그때 사람 불러 지혈해 줄게.” ‘예린이가 만족하면?’ 진서연은 절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무릎만 꿇으면 될 일일까? 혹시 머리까지 바닥에 박으면서 한 번 봐달라고 빌어야 해?’ “그만해요.” 주예린이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의 진서연을 부축하려 다가왔다. 그때 귀에 주예린의 속삭임이 들렸다. “진서연 씨는 절대 저를 이길 수 없어요. 아기도, 이현준 오빠도 말이죠.” 주예린은 말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참, 서연 씨의 아기는 젖 한 모금도 못 먹고 중환자실로 갔어요. 잘된 일이죠. 제가 직접 손댈 일도 없어졌으니까요. 제가 서연 씨의 애기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 애가 죽어야, 현준 오빠랑 제가 우리 아기를 갖죠.” 그 말에 끊어질 듯 간신히 버티던 신경이 탁하고 끊겼다. ‘넘어가면 안 돼. 함정이야. 또 누명을 씌우려는 거겠지.’ 진서연은 속으로 외쳤으나 몸은 본능대로 움직였다. 그건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본능이었다. 진서연은 주예린을 밀쳐내고 고개를 들어 이현준을 바라봤다. 출산 전만 해도 평생 함께하자고 속삭이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배신하고 있었네.’ “현준 오빠, 난 그저 형님을 침대로 모셔 쉬게 하려던 것뿐이에요. 그런데 형님이...” 주예린은 다시 휘청이며 넘어졌다. 치맛자락이 바닥의 피를 스치며 더없이 처연해 보였다. “진서연!” 이현준은 이번에 완전히 격노했고 서늘한 기세가 병실을 꽉 메웠다. 진서연은 이현준의 사업 일부가 지하 세력과 걸쳐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세계에서 사람 목숨 하나 정도는 가벼울 수도 있었다. 진서연은 목숨이 단 하나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진서연은 결국에 무릎을 꿇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진서연은 도대체 아파서인지, 마음이 부서져서인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잘못했어요. 밀지 말아야 했었는데... 미안해요.” 그러자 이현준의 눈빛이 어둡게 흔들렸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진서연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겨우 피딱지로 붙어 있던 절개선이 다시 벌어졌다. 그래도 진서연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서연은 한 번, 또 한 번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오래 지나서야 이현준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해. 예린은 너랑 달라. 너그럽게 널 용서해 준다잖아. 넌 일단 네 몸부터 추스르자. 너도 아이 원하잖아? 퇴원하면 우리 하나 더 낳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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