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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혼 서류는 신속하게 작성되었다. 강우희는 묵묵히 짐을 챙겼고 이제 이 집에는 더 이상 그녀의 자리가 없었다. 박여금은 요즘 온서진이 집안의 주요 보호 대상이기 때문에 강우희가 계속 남아 있으면 오히려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여민수도 반박하지 않았고 강씨 가문이 신서랜드 분점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강우희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가져가는 짐은 많지 않았다. 15분도 채 되지 않아 여행 가방을 잠그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민수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기뻐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점점 강해졌다. 마치 무언가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그의 통제력을 잠식해 가는 듯했다. 이런 장면은 예전에도 있었다. 7년 전, 강우희는 그와 함께하기 위해 평소와 달리 순종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모든 것을 걸고 강씨 가문과 결별하려 했다. 그때 여민수는 아직 가난한 젊은이였지만 뛰어난 지능과 수완을 갖춘 자수성가형 청년이었다. 강씨 가문은 그를 무시했고 강우희와 그를 떼어놓기 위해 몰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여금은 강우희가 말을 듣지 않으면 강씨 가문에는 그런 딸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강우희는 몸에 걸친 값비싼 장신구를 모두 벗어던지고 오늘처럼 간단한 옷 몇 벌만 챙겨 들고 강씨 가문 대문을 나섰다. 다만 그때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빗물이 그녀의 뺨을 적셨지만 그녀는 열렬히 웃으며 말했다. “민수 씨, 당신만 있으면 충분해요.” 여민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쫓았다. ‘사랑은 사라지는 걸까?’ 예전 온통 그녀로 가득했던 마음이 정말 온서진의 말처럼 사실은 자신의 형을 짝사랑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녀가 단지 필요할 때만 선택한 사람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심장은 쥐어짜이는 듯 아팠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심장을 꽉 쥐고 있는 듯했다. 박여금은 그의 시선을 감지하고 재빨리 그의 소매를 잡으며 물었다. “민수야, 서진이 뱃속의 아이는 괜찮은 거야? 의사는 뭐라고 했어?” 여민수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일단은 별일 없다고 하네요. 하지만 며칠 더 입원하며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먼저 돌아왔어요.” 박여금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다려. 내가 바로 챙겨줄게. 김에 바다 옷도 몇 벌 챙겨줄게. 요즘은… 어휴…” 이 소동을 겪은 후 강우희는 택시를 잡았다. 여민수는 벌떡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쫓아가고 싶었지만 택시는 이미 출발했고 점점 검은 점으로 멀어져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강우희를 태우고 빠르게 떠났다. 여민수는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탁자 위의 이혼 서류로 향했다. 그의 서명은 용이 날아오르는 듯 힘차게 쓰여 있었고 단번에 결심한 듯 단호한 글씨체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마음속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했다. 분노 같기도 후회 같기도 했다. 그녀가 어떻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결혼을 끝낼 수 있었는지에 분노했고 자신이 순간적으로 충동적으로 서명할 수 있었던 일에 후회했다. 사실 온서진에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처음에는 속았다는 분노 때문이었고 나중에는 강우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며 그 후에는 그저 그녀 뱃속의 아이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혼하겠다는 말은 완전히 감정적인 충동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온서진의 감정을 잘 다독여 그녀가 무사히 아이를 낳고 바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바다는 원래부터 그의 눈앞에서 자라온 아이였고 지금은 핏줄로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몇 달만 더 기다리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고 그때 강우희에게 다시 돌아가 재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버려진 결혼반지를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잡았다. ... 박여금은 곧 갈아입을 옷을 챙겨주며 여민수에게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그는 기계적으로 밖으로 나와 운전대를 잡고 멍하니 병원으로 향했다. 온서진의 병실에 가까워질 무렵 정신을 차렸지만 손을 문손잡이에 얹는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발길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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