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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성유리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라곤 없었다. “뱀한테도 한번 물리면 10년은 무서워한다잖아. 진우랑 이혼하면 평생 결혼 안 하고 아림이랑 둘이 살 거야?” 박지훈이 성유리를 보며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을 하자 성유리는 몸을 흠칫 떨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박지훈의 짙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죠.” 박지훈은 성유리의 속마음이라도 읽고 싶은 건지 말없이 그녀의 복잡한 표정을 주시했다. 그 따가운 시선에 성유리는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아직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은데요? 저랑 거래하실 거예요?” 눈을 감았다 뜬 박지훈은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더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별장에 관련된 자료 내 비서실장한테 보내놔.” 표정은 담담해도 사실 이미 거절당할 각오까지 하고 있었던 성유리는 생각보다 빠른 승낙에 눈을 크게 뜨며 마찬가지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술 대신 차라도 마실게요. 좋은 거래가 되길 바라요.” 박지훈도 성유리와 찻잔을 부딪치며 대꾸했다. “잘해보자.” 성유리가 찻잔을 내려놓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려왔고 화면에는 박진우의 이름 세글자가 떡하니 떠 있었다. 옆에 앉은 박지훈 역시 보일 정도의 크기였기에 그는 성유리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안 받아?”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성유리는 고민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박진우가 전화할 때는 항상 안 좋은 일이었거든요. 안 받고 싶어요.” 핸드폰을 뒤집어 놓은 성유리의 얼굴에는 언제부터인지 그늘이 져 있었다. “아직도 사인 안 했어?”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박지훈에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네.” 그 말에 박지훈은 더 이상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고 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날 저녁, 박지훈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성유리는 멀리서부터 윈드타워 아래쪽에 서 있는 인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박지훈에게 차를 세우라는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전에는 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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