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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2년 동안 이어진 장거리 연애가 드디어 끝난다고 생각하니, 소유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예쁜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고, 겨울의 차가움도 곧 만나게 된다는 설렘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그녀는 캐리어를 끌며 하준명의 집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문이 열리자 소유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시선에는 소파 위에서 뒤엉킨 두 사람이 들어왔고, 머릿속은 쾅 하고 터지는 듯했다. 분노를 꾹 참으며 주먹을 쥔 소유나를 소파 위의 둘은 눈치채지도 못했다. 역겨움을 억누른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영상 녹화를 켰다. 마침내 여자가 소유나를 발견하고는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하준명도 화들짝 놀라 담요를 푹 끌어당겨 몸을 감싸며 여자를 뒤로 숨겼다. “소유나, 너 뭐 하는 거야?” 눈시울이 빨개진 소유나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장면은 당연히 친구들한테 공유해야지.” 하준명은 알몸인 여자를 뒤에 둔 채 담요를 둘둘 감으며 소유나의 휴대폰을 낚아채려 다가왔다. “한 발짝만 더 오면 바로 전체 발송이야.” 그는 믿지 않는 듯 더 다가왔고, 소유나는 주저 없이 전체 발송을 눌렀다. 맑고 가차 없는 클릭 소리에 하준명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늘 착하고 순하던 소유나가 이렇게 독해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소유나, 너 죽고 싶어?” 이마의 핏줄까지 불거진 하준명이 이를 갈았다. 휴대폰을 높이 든 소유나는 화면에 찍힌 번호를 보여 주었다. “나 경찰에 신고했어.” “너...!” 말끝을 잇지 못한 그가 소유나를 가리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네가 이겼어.” 찬 기운이 흐르는 소유나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지난 2년의 시간은 개한테 줬다고 생각할게. 아니, 너는 개만도 못해.” ... 하준명의 집을 나선 소유나는 절친 유연서의 집으로 향했다. 다섯 날 머무는 동안, 유연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준명의 욕을 퍼부었다. 아침, 휴대폰을 바라보며 시무룩해진 소유나의 옆으로 유연서가 다가와 팔을 두르고 속삭였다. “속상해하지 마. 그 인간 본색을 본 게 차라리 다행이야.” “이젠 안 속상해. 단지 아버지가 알아본 맞선을 고민 중이야.” “뭐라고?” 아버지가 좋은 집안을 소개한다며 계속 귀국을 재촉해 왔다. 남자는 집안도 좋고 키도 크며 잘생겼고, 외아들이라고 했다. 결혼을 승낙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예단, 두 달 안에 임신하면 200억 보너스, 아들딸 하나만 낳아도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끝없는 재산을 누릴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얘기를 들은 유연서가 비웃으며 손뼉을 쳤다. “네 새엄마가 꾸민 일 같네. 진짜 좋은 조건이면 자기 딸부터 보내겠지. 이건 그냥 천 길 낭떠러지야.” “너 혹시 뭐 아는 거라도 있어?” “네 아버지 말도 거짓은 아닌데 중요한 한 줄이 빠졌어.” “뭐가?” “남자 이름이 문지후야. 잘생겼고 돈도 많고 능력도 있어. 예전에는 구룡시 여자들이 다들 그 사람한테 시집가고 싶어 했고, 안 되면 하룻밤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다더라.” “문지후...” 귀에 익은 이름에 소유나가 중얼거렸다. “구룡시 사람이라면 다 알아. 그런데 작년에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터졌어. 얼마 못 산다더라. 원래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듣고 곧바로 해외로 도망갔대. 곧 죽을 사람한테 시집가면 사실상 시체랑 결혼하는 거지.” 꽤 비참했다. “새엄마가 생기면 새아버지도 생긴다더니 딱이네. 네 새엄마는 너더러 과부 생활이나 하라는 거지.” “죽으면 다른 사람이랑 재혼할 수도 있잖아.” “진짜 그럴 생각이야? 그 사람 지금 어떤 몰골일지 상상도 안 간다. 게다가 이 시점에 급하게 결혼하려는 건 죽기 전에 대를 잇고 싶어서겠지. 완전히 뒤틀린 거야!” “하지만 돈은 많잖아.” “...” 낮게 말한 소유나를 유연서가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으면 재산은 내 거야. 그때 돈도 자유도 다 손에 넣겠지.” “너 제정신이야?” “완전 제정신이야. 사랑 같은 건 귀신이랑 비슷해. 들었다는 사람은 많아도 본 사람은 없어. 굳이 쫓지 않을래.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결국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건데, 지름길이 생겼는데 왜 안 가?” “...왜 나도 설득력 있어 보이지?” “현실이 원래 그래.” 소유나가 웃었다. ... 밤이 깊어지자 하준명은 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소유나를 온갖 말로 모욕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른 번호로 또 걸어왔고, 그녀는 몇 개 번호를 연달아 차단하다가 끝내 휴대폰 전원을 꺼 버렸다. 다음 날 전원을 켜자 메시지가 폭주했다. 대부분 하준명이 보낸 것이었다. 단톡방에도 ‘가슴은 가짜, 낯짝은 음탕한데 착한 척한다’ 같은 저속한 말이 넘쳐났다. 소유나가 깊게 숨을 들이켜 분노를 억눌렀다. 그리고 소재훈에게 전화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녀는 문씨 가문 대저택에 도착했지만 문지후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그의 부모 문석민과 안서영이 나왔다. 소유나가 결혼을 승낙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격한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의 조건은 단 하나, 혼인신고를 먼저 하자는 것.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혼식은 필요 없다고 했다. 상대측은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곧바로 구청 직원이 불려 와 집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제야 소유나는 처음으로 문지후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남자는 유연서의 말 그대로였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깊은 눈매가 사람을 끌어당겼다.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차례가 오지 않았을 남자였다. 소유나는 완성된 결혼증명서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안서영은 결혼식을 생략해도 예단은 그대로라며, 생활비 명목의 거액이 든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가 묵직할 정도로 액수가 컸다. 그녀는 미련 없이 받아들였다. 결혼증명서 속 문지후라는 이름을 바라보며, 부모가 아들을 팔아넘긴 걸 알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잠시 상상했다. 문씨 가문 대저택을 나서는 길, 소재훈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문씨 가문에서 꽤 많은 걸 챙겨 줬나 보네요.” 소재훈이 살짝 당황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야.” “시치미 떼지 마요.” 걸음을 멈춘 소유나가 그를 바라봤다. “이득이 없었다면 저를 떠올리지도 않으셨겠죠.” 얼굴이 뜨거워진 소재훈이 더듬거렸다. “유나야...” 소유나는 손을 들어 말을 막고 앞서 걸으며 담담히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세요.” ... 유연서는 그녀가 정말 문지후와 결혼했다는 소식에 방 안을 뱅뱅 돌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이상 되돌릴 수는 없었다. “네 아버지도 참 독하다. 불구덩이인 줄 뻔히 알면서 널 떠밀다니. 너도 왜 그렇게 선뜻 혼인신고를 했어? 만약 그 사람이 너를 괴롭히면, 신고 안 했으면 도망이라도 갈 수 있잖아. 근데 이미 했으니 그 사람이 너를 죽여도 도망 못 가!” 걱정과 분노로 눈시울이 붉어진 친구를 보며 소유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혼인신고는 했지만, 당분간 그 사람 앞에 나타날 생각이 없어.”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유연서에게 소유나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네 말로는 그 사람 내년 2월까지 못 산다며? 이제 겨우 석 달 남았는데, 그동안 숨어 있다가 힘이 다 빠지면 그때 가서 얼굴 비출 거야.” 계획은 그럴싸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 말을 꺼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녀를 찾아왔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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