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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문지후는 욕실로 들어가며 더는 소유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조용해진 방에서 소유나는 목을 쓰다듬었다. 방금 전 그는 정말 자신을 목 졸라 죽일 듯했다.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당분간 그를 피해 다닐 생각이었다.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옮기며 속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부잣집 사모가 되는 길도 쉽지 않네.’ 잠시 뒤 욕실에서 나온 문지후가 문가를 훑어봤다. 자리에 그녀가 없자 나가 버린 줄 알았지만 그림자 속에서 움츠린 그녀를 발견했다. 소유나는 바닥에 앉아 유연서와 문자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유연서는 오늘 밤 소유나가 문지후와 한방을 쓰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이 앞섰다. 소유나는 바닥을 찍은 사진을 유연서에게 보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욕망이라고 하면 내가 그 사람보다 더 클 거야.] 문자를 보내자마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회색 실크 잠옷을 걸친 문지후가 서 있었다. 풀어진 깃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목선과 도드라진 목젖이 여자가 질투하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촉촉한 머리카락과 살짝 내리깐 눈매에서는 귀족적인 고양이 같은 나른함이 엿보였다.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얼굴,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둔 것만으로도 이득이었다. “지후 씨, 일찍 쉬어요.” 그녀는 그의 건강을 떠올리며 공손히 인사를 건넸지만, 문지후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침대로 가 이불을 들추고 눕더니 곧바로 불을 꺼 버렸다. “...” 넓은 방 안, 소유나는 남의 집에 들어온 길 잃은 고양이 같았다. 주인이 반기지 않으니 어둠 속 구석에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유연서는 순간 하소연할 마음도 싹 가셨다. 문지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라면 자신도 경찰을 불렀을 것 같았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소유나는 낯선 공간에서, 잘 알지 못하는 남편인 사람과 한방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며칠 새 벌어진 일들은 꿈만 같아 웃음이 나다가도 씁쓸함이 스쳤다. ‘내가 고른 길이면 무릎으로라도 간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 소유나는 한기에 몸을 떨며 깼다. 따뜻한 이불도, 침대로 옮겨 주는 손길도 없었다. 남자는 정말 무정했다. 문지후는 이미 단정히 옷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욕실에 갈아입을 옷 있어. 깔끔히 정리해. 괜히 내가 유나 씨 괴롭힌다고 오해받으면 곤란하잖아.” 콧등을 비비던 소유나는 재채기를 했다. ‘저 사람이 남 시선 따위 신경은 쓰기나 할까?’ 벽을 짚고 일어나려니 다리가 저리고 허리며 목까지 욱신거렸다. 그녀가 힘겹게 욕실로 들어가는 동안, 문지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속으로는 오래간만에 이상한 감정이 샘솟았다. ‘정말 밤새 바닥에 있었나...’ 생각보다 눈치 있는 여자라는 느낌이 스쳤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는 욕실을 흘깃 보며 통화를 받아 들었다. “지후 씨, 나 넘어졌어요...” 소유나의 코맹맹이 섞인 울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괜찮은가 했더니 또 일 만든다는 듯, 문지후의 미간이 깊어졌다. “넘어졌으면 일어나.” 차디찬 대꾸에 소유나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일어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전화했을 리 없었다. “못 움직이겠어요.” 욕실 안에서 목소리는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지를 벗으며 한쪽 다리로 버티다가 힘이 풀려 넘어진 참이었다. 손이 미끄러지며 휴대폰을 겨우 끌어왔기에 전화라도 할 수 있었다. 안 그러면 지금쯤 목 놓아라 소리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남자의 싸늘한 한마디에 소유나는 괜히 서러워졌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휴대폰 너머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그는 속으로 그녀의 잘못이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지후 씨...” 소유나가 다시 불렀다. 짧은 뚝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포기하려던 순간 욕실 문이 열렸다. 문지후는 굳은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소유나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위에는 검은 브라만 걸친 채 눈부신 살결을 드러냈고, 아래는 한쪽 다리만 청바지에 끼워진 난감한 자세였다. 이렇게 보기 민망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소유나는 얼굴이 화끈했다. 자신도 보기 흉한 걸 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정말 못 일어나요.” 그녀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허리를 들어 보였지만,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밀려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문지후는 눈빛이 한층 어두워지더니 허리를 굽혀 두 팔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 피부에 닿는 순간 목젖이 불규칙하게 움직였지만, 시선을 돌린 채 침대까지 걸음을 옮겼다. 소유나는 그가 깔아 둔 침대라는 것도 잊고 서둘러 이불을 끌어 덮었다. “고마워요.”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렇게 창피한 적은 처음이다. 하필 그의 욕실에서, 그것도 바지를 벗다 넘어지다니. 다만 완전히 벗진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소유나는 창피함에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문지후는 휴대폰을 꺼내 짧게 전화를 걸었다. “본가로 잠깐 들러 주세요... 네, 유나 씨예요.” 전화를 끊고 이불 속에 숨은 그녀를 힐끗 보며 미간을 좁혔다.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자기 침대에 누워 있으니 귀찮음을 넘어서 골칫거리였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소유나는 그가 분명 의사를 불렀을 거라 짐작하며 조심스레 이불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나 옷 좀 건네줄 수 있을까요?” 문지후는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곧 누가 오면 어떡해요... 나는 지후 씨 아내고, 여기 지후 씨 침대잖아요...” “조용히 해.” 문지후는 욕실에서 여성용 홈웨어 세트를 가져다 침대 위에 던졌다. 소유나는 전에 욕실을 둘러보며 안쪽에 커다란 드레스룸이 있는 걸 봤다. 세면도구는 물론 여성용 속옷과 홈웨어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을 들인 준비였다. 그녀는 준비된 옷을 집어 들고 서둘러 갈아입었지만, 바지만큼은 도무지 끼워 올릴 수 없었다. 허리가 욱신거리고 다리도 들리지 않아 바지가 올라가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들어 문지후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읽은 그는 여름 장마철처럼 먹구름 낀 얼굴이었다. “지후 씨, 도와줘요.” 소유나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애원했다. 이런 부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아니면 아주머니라도 불러줘요.” 문지후는 끝내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다정하지 않은 손길로 이불을 거둬 내리자, 그녀의 몸이 온전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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