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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유나는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몸이 부드럽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평평하고 탄탄한 아랫배, 검은 속옷과 피부색의 선명한 대비, 회색 침대 위로 뻗은 길고 균형 잡힌 다리는 보는 이에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줬다. 몸매가 좋다는 건 문지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그 매력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그녀를 안았을 때 느꼈던 부드러운 촉감이 아직 손끝에 은근히 남아 있었다. 문지후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더니 몸을 숙여 다른 바짓단을 잡아당겨 헐렁한 바지를 끼워 올리고 허리까지 당겨 올렸다. 손가락이 그녀의 피부를 스치자 닿은 부분이 살짝 떨리며 긴장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흰 피부에 옅은 붉은 기운이 돌고, 눈빛은 어딘가 어색했다. 문지후는 이불을 다시 끌어와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등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 문에 노크했다. “들어와요.” 가정의가 들어와 먼저 문지후를 바라봤다. “넘어졌다고 해서요. 심각한지 확인해 줘요.” 문지후가 눈짓했다. 의사는 간단히 소유나를 살폈다. 몇 군데 눌러 본 뒤 근육이 조금 늘어난 정도라 스트레칭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지는 숨소리가 거칠자 의사가 물었다. “감기 기운이 있네요.” “네.” “임신 준비 중이신가요?” 의사와 함께 들어온 안서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이 질문이 무척 신경 쓰이는 듯했다. 문지후가 대답하기도 전에 소유나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사는 어쩔 수 없이 문지후를 힐끗 바라봤고, 문지후는 깊은 눈빛으로 소유나를 노려봤다. 소유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안서영에게 들려주려던 말이었으니까. 의사는 처방전을 내주고 안서영과 함께 내려갔다. 방에는 문지후와 소유나만 남았다. 그 한마디 때문인지 소유나는 문지후를 마주 보기가 살짝 쑥스러웠다. 드물게 문지후는 따지지 않고 옆방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진우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대표님, 물건 가져왔습니다.” 그는 서류 한 부를 건네며 말했다. “지시하신 대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문지후는 서류를 받아 훑어본 뒤 즉시 침실로 들어가 소유나에게 내밀었다. “계약서야. 이 결혼을 계속 원하면 서명해.” 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은 소유나도 몰랐다. 그녀는 서류를 넘기다 마지막 한 줄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지후 씨가 나를 사랑하게 되면 이 계약은 그대로인가요?” “그럴 일 없어.” 문지후는 단호했다. 다른 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기에 소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계약은 그가 마음 편해지려는 장치일 뿐, 그녀에게 실질적 효력은 없었다. “세상일에 절대는 없잖아요.” 문지후는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봤다. 눈빛에 할 말이 많았지만 좋은 말은 아니었다. 소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적고,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을 찍어 기록한 뒤 서류를 돌려줬다.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문지후는 시선을 한 번 더 주었다. ‘가끔은 눈치도 있군.’ “앞으로 본가에 가라는 말 나오면 알아서 핑계 대줘.” ... “계약서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 유연서가 궁금해했다. 소유나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담요를 두른 채 코를 훌쩍였다. “많은데, 핵심은 세 가지야. 첫째, 걔랑 신체 접촉 금지.” 유연서가 웃었다. “너 완전 변태 취급 받네.” 소유나가 코를 한번 훌쩍이며 말했다. “그 얼굴이랑 몸 보면 나도 흑심이 생기기는 해.” “...그리고?” “둘째, 밖에서 만나면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진짜 결혼하기 싫어하네.” “셋째, 우리 관계 절대 말하지 말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지후 씨한테 감정 갖지 말기.” 유연서가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 너를 싫어하는 걸까? 결혼을 싫어하는 걸까?” 소유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아마 주로 나겠지.” “다 너를 방어하는 조항이잖아. 너는 뭐 얻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리자 소유나는 화면을 확인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얻을 게 왜 없어? 시댁 안 모셔, 남편 안 돌봐. 한 달에 몇천만 용돈이면 괜찮지.” “진심이야? 걔 죽으면 너도 시끄러워져.” “사람은 다 죽어. 빠르냐 늦느냐 차이지.” 소유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어차피 나 다시 결혼할 생각도 없거든.”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랑을 안 믿으니까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거야.” “사랑 타령 좀 그만.” 소유나가 웃었다. “나 아무렇게나 사는 거 아니야. 너 몰라서 그래, 걔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시한부 같지도 않아. 안 죽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난 대박이고.” 유연서는 웃지 못했다. 그에게 시집가는 건 기쁨도, 돈도 아닌, 소유나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소유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통화할 때는 밝은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말했다 “유부녀 신분 효과가 곧 나타날 거야.” 유연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효과?” “눈엣가시 차단.” 소유나는 하준명을 도우려고 본사에 요청해 구룡시로 전근했다. 뜻밖에도 그녀에게 관심 있던 상사의 아들 주지환 역시 구룡시로 내려왔다. 오늘 밤에는 부서 사람들 모두 모이는 회식까지 잡혔다. 아직 복귀 신고도 안 했지만, 전시회 준비 탓에 지사 사람들과 자주 마주쳐서 이미 얼굴은 다 알려졌다. 회식을 빠지기에는 좀 애매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유연서가 문득 물었다. ‘계약 어기면 어떻게 되는 거였지?’ ... 가장 중요한 조항에 관해 문지후는 확실한 벌칙을 적어 뒀다. 계약을 어기면 시내 한복판에서 쪼그리고 뛰며 개 짖는 소리를 내야 한다. 품위 없는 벌칙을 생각해 낼 정도로, 문지후가 그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치해 보여도 그 벌칙은 서로에게 꽤 강한 족쇄였다. 물론 주된 목적은 그녀를 제어하려는 것이었다. 소유나는 차에서 내려 외투를 여미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룸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가에 있던 사람이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유나 씨, 빨리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요!” 모두가 뒤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소유나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늘 감기 때문에 집에서 늦잠 잤어요.” “괜찮아요?” 주지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작은 감기예요, 문제없어요.” 익숙한 얼굴들이라 분위기는 금세 편안해졌다. 주지환이 소유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이미 본사에서 지사까지 퍼져 있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주지환의 옆자리를 비워 두었고, 소유나는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사회생활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웃음이 가득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주지환이 샴페인색 장미 다발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사람들은 입꼬리를 누르며 웃었고, 시선은 자연스레 소유나에게 향했다. 그녀도 상황을 곧장 파악했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주지환을 딱히 이유 없이 거절하면 앞으로 함께 일하기 곤란해질 수도 있다. 열려 있는 문틈으로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유나 씨, 다시 싱글이 됐다고 들었어요. 저한테 사랑할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 주지환이 대담하게 고백했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서둘러 대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소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저는 싱글이 아니라 이미 가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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