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히고, 모두 놀란 표정으로 소유나를 바라봤다.
주지환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녀의 깨끗한 두 손을 슬쩍 확인하더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를 거절하려고 정말 별의별 이유를 다 만드네요.”
소유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문지후를 끌고 와 보여 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거짓말로 하는 말 아니에요.”
소유나는 난감하게 말했다.
“그럼 남편분을 모셔 와서 인사라도 하죠.”
주지환은 여전히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소유나는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
“지금 바빠서...”
“유나 씨.”
주지환이 말을 막았다.
“저는 유나 씨를 경운시에서 구룡시까지 따라왔어요. 정말 진심입니다.”
그는 주위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진지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 결혼했다면 축하드려요. 하지만 저를 피하려고 거짓말하는 거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요.”
그는 한 발 더 다가서며 덧붙였다.
“저한테, 아니 우리 둘한테 한 번 기회를 줘요. 저는 정말 유나 씨가 좋습니다. 정식으로 만나고 싶어요.”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주지환을 거절할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누군가 거들었다.
“기회 한 번 줘 봐요.”
전부 그의 식사 초대를 받은 터라 한번 만나 보면 어떠냐고 권하기 시작했다.
그때 소유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달콤하게 말했다.
“여보...”
달달하게 흘러나온 여보라는 말에 주지환의 표정이 굳었고, 사람들도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소유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대가 싫어하든 말든, 전화는 그쪽에서 걸어온 것이니까.
“여기는 다 끝났어요. 여보 일은요?”
소유나는 문지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마구 말했다.
“나 성원각에 있어요. 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그가 올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고, 왜 전화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잘못 걸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전화를 끊은 뒤 소유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방금 남편이었어요.”
“정말 결혼했어요?”
“네.”
주지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람들 중 누군가는 농담 섞어 말했다.
“결혼 같은 큰일을 숨기다니, 오늘 안 물어봤으면 몰랐겠어요. 이렇게 된 김에 누가 그렇게 복이 좋아 소유나 씨랑 결혼했는지 봐야죠.”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쳤다.
소유나는 그들이 자신의 말이 거짓말인지 확인하려 한다는 걸 알았다.
조금 불안했다.
결혼은 사실이지만 문지후를 보여 주는 건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결혼했는데 남편 얼굴도 못 보여 준다면 누가 믿겠는가.
이렇게 몰리자 소유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나 어색해 보일지는 몰랐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아직 일이 안 끝나서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아직 이르잖아요. 기다릴게요.”
주지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유나는 헛웃음으로 대답했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유연서에게 남편 행세할 사람을 구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비 온다.”
누군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소유나는 창문을 통해 빗방울이 도시의 불빛을 흐릿하게 번지게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제 그들은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유나의 얼굴은 더 달아올랐다.
결혼은 사실, 남편이 안 오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 진실인데, 사람들 눈에는 거짓처럼 보였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거리는 한산해졌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가슴이 덜컹했다.
소유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쉰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왜 아직도 안 나와요?”
문지후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왔어요?”
소유나는 창밖을 둘러봤다.
“쯧.”
“...”
그의 태도가 아무리 거칠어도 이 난처함을 벗겨 주니 고마웠다.
전화를 끊고 소유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편이 왔어요. 먼저 가볼게요.”
“우리가 배웅할게요.”
소유나는 웃었다.
문지후가 관계 드러나는 걸 싫어하더니, 웬일로 데리러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식당 밖에 나오자, 젖은 도로가 가로등을 받아 반짝였다.
검은 마이바흐 한 대가 비상등을 켠 채 서 있었다.
정말 그 차인지 확신이 안 서 전화하려는데 운전석 문이 열렸다.
진우가 우산을 들고 다가왔다.
“사모님.”
그 한마디에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변했다.
소유나는 살짝 민망했다.
“대표님께서는 차에서 기다리십니다.”
“네.”
소유나는 여러 표정의 동료들을 향해 인사했다.
“먼저 갈게요. 다음에 또 봐요.”
진우가 우산을 높이 들어 그녀를 차까지 에스코트했다.
뒷문을 열자, 문지후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세상일에 관심 없다는 듯 말이다.
소유나가 올라타자 진우가 문을 닫았다.
우산을 접고 돌아온 진우가 차를 출발시키자, 식당 앞에 남은 사람들은 떠나는 차를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먼저 말했다.
“유나 씨 진짜 잘 시집갔네요.”
“근데 남편 얼굴을 안 보여 주네요. 대체 누구죠?”
“기사 수준 보니 남편도 만만치 않겠죠. 유명 인물이라 얼굴 비추기 싫은가 봐요.”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 걸 수도. 결혼 같은 큰일도 숨기는데 데리러 와서도 안 나타나다니 말이 돼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소유나는 알 것 같기도 하고 개의치도 않았다.
다만 문지후가 왜 이렇게 친절히 데리러 왔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고마워요.”
문지후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누가 귀찮게 굴어?”
소유나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꽃다발도 없었고, 따로 이야기는커녕 함께 걷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이 커졌다.
“혹시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건 거였구나!’
영롱한 눈빛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유나는 솔직히 말했다.
“맞아요.”
“왜 안 받아줘?”
소유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은 결혼하기 싫어요.”
문지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희한하네.”
“뭐가요?”
“나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기 싫거든.”
“...”
소유나는 입을 다물고 앞만 바라봤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쯤 그는 자신을 버리고 해외로 떠난 그 여자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도 꽤 안됐다.
인생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사랑했던 사람은 떠나 버렸고, 결국 부모의 압력에 못 이겨 아무 여자나 골라 결혼했다.
소유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차 세워.”
진우가 차를 갓길에 붙이며 또 무슨 지시가 있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려.”
살짝 고개를 돌린 문지후의 말은 소유나를 향하고 있었다.
소유나는 입술을 꾹 눌렀다. 뜻밖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큰 도움을 받았으니 집까지 데려다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녀는 불만 하나 없이 문을 열고 내렸다.
비는 가늘지만 촘촘히 내려 옷 위에 금세 방울을 맺혔다.
문을 닫고 길가에 서 있는데 출발하던 차가 다시 멈췄다.
진우가 내려 우산을 건넸다.
“비가 많이 옵니다. 쓰세요.”
“고마워요.”
소유나는 기꺼이 받았다.
진우가 차에 오르자 차량은 다시 도로로 흘러들어 사라졌다.
소유나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차 안, 진우가 룸미러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대표님, 도와주시고 나서 왜 굳이 내려놓고 가세요?”
“마음에 안 들어.”
문지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느다란 빗줄기 아래 물비친 도로가 거울처럼 반짝였다.
진우는 더 묻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