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남자친구와 혼인 신고를 하러 갔는데 여동생이 결혼 신고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하지만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가는 길에 그녀와 동생이 함께 납치될 줄이야.
다시 눈을 떴을 때,` 두 사람의 몸에 폭탄이 묶여 있었고 폭발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10분이었다!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누군가 창고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육현석의 모습이 문가에 나타났다.
그는 정장이 흐트러졌고, 이마의 잔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전속력으로 달려온 듯했다.
“현석아!”
송하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육현석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지도 않고 소예린에게 직행했다.
“예린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왔어.”
그는 소예린 앞으로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몸에 묶인 폭탄을 재빨리 해체했다.
송하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 광경을 지켜보며 심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꽉 움켜쥐어진 듯했다.
육현석은 이미 ‘기절한’ 소예린을 안아 들고 나서야 송하윤을 돌아보았다.
“하윤아, 조금만 참아. 예린이는 몸이 약해서 지금 겁에 질려 기절했어. 내가 먼저 병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너를 구하러 돌아올게.”
송하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위의 숫자를 보지 못하는 거야? 타이머는 5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어떻게 제시간에 올 수 있단 말이지?’
육현석의 모습이 문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송하윤은 점점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며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소매 속에 숨겨둔 휴대폰을 꺼냈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비장의 카드였다.
그녀는 5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5분 뒤면 저 죽어요.”
전화기 너머에서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이준호의 극도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위치.”
“옛날 방직 공장, 동쪽 창고.”
송하윤은 천천히 흘러가는 타이머 숫자를 보았다.
“미안해요. 아저씨... 제가 잘못 선택했어요. 다음 생에는 반드시 아저씨를 선택할게요...”
0:15.
0:14.
0:13.
창고 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열리고 늘씬한 실루엣이 역광을 받으며 나타났다.
이준호는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그의 뒤로는 무장한 폭파 전문가들이 따르고 있었다.
“해체해!”
그가 명령하자 전문가들이 즉시 달려들었다.
이준호 자신은 송하윤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잔뼈가 굵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속박을 풀었다.
타이머는 0:01에 멈췄다.
폭탄이 성공적으로 해체되는 순간, 송하윤은 이준호의 품에 쓰러졌다.
남자의 은은한 삼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싸는 순간, 그녀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이준호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왔잖아.”
검은색 마이바흐 안, 송하윤은 조수석에 웅크리고 앉아 이준호의 코트를 걸친 채 오래도록 울었다.
눈이 붓고 건조해질 때까지 울고 나서야 그녀는 운전석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이준호는 더욱 날카로운 윤곽과 위엄이 깃든 눈썹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 동작은 너무나도 부드러워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는 것 같았다.
“아저씨...”
송하윤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저에게 결혼해 주겠냐고 물었었죠? 이제 제 대답은 ‘좋아요’예요.”
이준호의 손이 공중에 멈췄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신중하게 생각한 거 맞아?”
그의 목소리가 조금 쉰 듯했다.
“내 사전에는 이혼은 없어. 오직 사별뿐이야.”
“신중하게 생각했어요.”
송하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아저씨, 보름만 시간을 주세요. 이 보름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할게요. 육현석을 완전히 잊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그 말을 들은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소중하게 행동했다.
“이준 그룹의 최근 몇 년간 사업은 이미 해외로 이전됐어. 앞으로 나는 해외에 거주할 건데, 나와 결혼하려면 함께 가야 해. 그러니 이 보름 동안 우리는 각자 일을 처리하자. 나는 해외에서 결혼식을 준비할 거야. 때가 되면 전용기를 보내 너를 데리러 갈게. 어때?”
“그래요.”
송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송씨 가문 빌라 앞에 멈췄다.
이준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그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살짝 닿았다.
“보름 후에 보자. 나의 신부.”
송하윤은 얼굴을 붉히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하게 차에서 내렸다.
빌라 안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현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육현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녀가 멀쩡한 것을 보자 그는 안심한 듯 곧장 달려와 꽉 안았다.
“하윤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너를 구하러 돌아갔는데 창고가 텅 비어 있었어. 나중에 네 아저씨가 너를 구해갔다는 걸 알았지. 너 괜찮아서 참 다행이야.”
그의 목소리는 당황함에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송하윤은 평온하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해. 나 안 죽었어.”
그 말을 들은 육현석은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네가 죽기를 바라겠어?”
그는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먼저 예린이를 구해서 화난 거지?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예린이는 부모도 없이 혼자라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다고. 너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랐고, 나 아니더라도 네 집안과 친한 이준호 아저씨가 도와줄 수 있잖아...”
이 말을 듣자 송하윤의 심장이 찌릿 아파졌다.
‘소예린에게는 부모가 없어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소예린 때문에 나 역시 부모가 없어졌잖아...’
소예린은 송하윤 부모의 옛 친구 딸이었다.
송씨 부부는 혼자 남은 그녀가 불쌍하다며 거두어 자신의 딸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소예린은 늘 심술을 부렸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집을 나가버렸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또다시 성질을 부리며 뛰쳐나가더니 길을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브레이크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대형 트럭이 그녀를 덮치기 직전, 송씨 부부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날, 소예린은 무사했고 송하윤은 부모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그녀의 어릴 적 친구였던 남자친구도 그녀의 전부가 아니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녀를 하늘처럼 받들며 눈빛으로만도 그녀를 다 담지 못했지만, 소예린이 나타난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그는 소예린이 부모 없이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이 안쓰럽다며, 매번 소예린 편을 들었다.
그녀가 40도 고열에 시달릴 때, 그는 ‘기침’하는 소예린을 간호하고 있었다.
3개월 동안이나 기다려왔던 생일 선물이, 소예린의 마음에 든다는 한마디에 주인이 바뀌었다.
심지어 소예린이 언니 집에서 사는 거라서 자기 집이 없다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갈 곳이 없다고 말했을 때, 육현석은 육씨 집안에 특별히 그녀를 위한 방을 남겨두었다.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송하윤은 소예린을 원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소예린은 죄책감은커녕 육현석 앞에서 계속해서 약한 척하며 일을 꾸몄다.
그는 매번 그녀를 보호하며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
예전 같았으면 송하윤은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육현석을 완전히 잊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도 태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육현석,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하지만 나는 아니야. 이제부터 네가 좋은 마음에 예린이를 잘 대해주든 다른 마음을 품었든 나와 아무 상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