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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말을 마친 송하윤은 육현석의 손을 뿌리치고 침실로 향했다. “하윤아!” 육현석은 그녀를 쫓아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분명하게 말해봐. 우리 곧 결혼할 건데 앞으로 상관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송하윤의 하얀 피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20년을 알고 지낸 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조바심 섞인 표정은 너무나 진실해 보여 정말 그녀의 대답에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말을 시작하려던 찰나,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육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발신자 표시를 보다가 손가락의 힘이 무심코 느슨해졌다. “현석 오빠...” 전화기 너머로 소예린의 나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어디예요? 저 너무 무서워요...” 육현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걱정하지 마. 금방 갈게.” 그는 전화를 끊고 난감한 표정으로 송하윤을 바라보았다. “예린이가...” “가봐.” 송하윤은 그의 손에서 손을 빼냈고, 목소리는 잔잔한 연못처럼 차분했다. “예린이가 더 중요하겠지.”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자.” 육현석은 말을 삼켰고 결국 한 마디만 남기고 서둘러 떠났다. 송하윤은 엔진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뒤돌아 방에서 육중한 나무 상자를 끌고 나왔다. 상자 안에는 누렇게 바랜 사진, 빛바랜 영화 티켓, 말라버린 장미꽃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그녀와 육현석이 수년간 사랑했던 모든 추억이었다. 그녀는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사진들을 한 장씩 불화로에 던져 넣었다. 불꽃은 육현석이 그녀에게 처음 선물했던 만년필을 삼켰고, 그들의 첫 데이트 때 찍었던 사진을 삼켰으며, 한때 그에게 모든 것을 바쳤던 자신을 삼켰다.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육현석은 소예린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가 빌라 안으로 들어섰을 때 불화로의 마지막 사진이 재로 변하고 있었다. “하윤아, 뭘 하는 거야!” 육현석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녀가 돌아보는 순간, 육현석은 달려들어 불 속에서 반쯤 타버린 사진 몇 장을 급하게 꺼냈다. 그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어두웠다. “미쳤어?” 그는 남아있는 사진 조각들을 손에 쥔 채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걸 왜 태우려고 그래!” 송하윤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잔잔한 연못처럼 평온했다. “하윤아, 약속할게. 다음엔 무조건 너부터 구하러 갈게. 알았지?”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분노를 억누르려 애썼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물건에 화풀이하지 마. 이건 우리 사랑의 추억이잖아.” 송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예린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하윤 언니, 화내지 마. 현석 오빠는 나를 그냥 동생으로만 생각해. 제일 사랑하는 건 언니잖아.” 육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송하윤은 눈을 내리깔고 육현석이 불에 탄 추억들을 하나씩 소중하게 챙기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의 행동은 마치 부서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는 죽은 물건을 그렇게 소중하게 대하면서 살아있는 그녀는 늘 무시했다. “밥 먹으러 가자.” 육현석은 분위기를 풀려 애썼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그 레스토랑으로 가자.” 말하면서 그는 송하윤의 손을 잡고 차로 이끌었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가 메뉴판을 건넸다. 송하윤은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고 소예린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육현석은 메뉴판을 받아 들더니 망설임 없이 능숙하게 몇 가지 매운 요리를 주문했다. 송하윤은 그의 행동을 보며 눈빛이 희미하게 어두워졌다. 소예린이 눈을 깜빡이며 천진한 척 물었다. “하윤 언니, 왜 안 먹어?” 육현석이 그제야 반응하며 어색하게 송하윤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매운 걸 시켰어.” 송하윤이 가볍게 웃었다. “이해해.”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소예린이 나타난 후, 넌 습관적으로 예린이를 선택하고, 예린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예린이를 보호했어. 다 알고 있어.” 육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답답한 어조로 말했다. “왜 또 그 얘기를 해?” 그는 손을 들어 맹세하는 시늉을 했다. “맹세할게. 다음부터는 무조건 너부터 구하러 갈게. 알았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흔들리더니 거칠게 떨어져 내렸다. “조심해!” 육현석은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품에 감싼 사람은 소예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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