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하은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는 것을 확인한 의사는 심예원을 향해 날을 세웠다.
심예원은 변명 한마디 없이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하도겸이 은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해 그의 손에 아이를 맡긴 건 나야...’
그녀는 의사의 쓴소리도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
병상에 누운 채 아직 깨어나지 못했던 하은서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엄마... 나도 아빠가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착하게 말 잘 들을게요...”
하은서의 눈물이 뺨과 머리카락을 적셨고 심예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의식을 잃은 순간에도 하은서는 하도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심예원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은서가 고열로 입원했어. 그래도 딸이니까... 한 번쯤은 와서 봐줘.]
그녀는 문자도 남겼지만 아침이 될 때까지도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하은서를 길가에 버려둔 그날 밤, 하도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소혜진, 소유준과 함께 야경을 보러 갔고 소혜진은 SNS에 사진을 올렸다.
단 한 번의 안부 전화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던 그는 끝까지 무관심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심예원은 더는 미련조차 품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 사람 마음속엔 애초에 은서는 없었고... 나는 더더욱 없겠지...’
밤새 병실을 지킨 끝에 하은서가 깨어났다.
“엄마,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그 말에 심예원은 울컥했지만 꾹 참고 아이를 꼭 끌어 안았다.
“우리 은서가 왜 미안해? 엄마가 더 미안하지.”
‘아빠의 사랑을 못 받는 아이로 만들어서 미안해...’
그렇게 속으로 수없이 자책하며 눈물을 삼켰다.
“엄마 울지 마요. 이제 괜찮아요.”
“그래. 엄마도 뚝 그칠게...”
하은서가 작은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심예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약을 챙겼다.
병원에 입원한 지 삼 일째 되던 날, 퇴원 절차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하도겸에게서 처음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직 병원에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단 한 줄이었지만 하은서는 휴대폰 화면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저씨가 데리러 온대요!”
그 말 한마디에 또다시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심예원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순간 심예원은 아이의 벅찬 기대감이 묻어나는 얼굴을 마주한 채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올까...’
심예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이번만큼은 죄책감 때문이라도 약속 지켜주기를...’
시간은 조금씩 흐를수록 하은서의 얼굴에서 웃음도 서서히 사라졌다. 아침부터 점심이 지날 때까지 아이는 내내 병실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심예원은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보고 다시 하은서를 바라봤다.
하은서는 그 시선을 느꼈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안 오는 거죠? 바빠서 데리러 오는 걸 까먹었나 봐요. 엄마, 우리 그냥 가요.”
하은서는 억지로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심예원의 손을 붙잡았다.
심예원의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왔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랑 집으로 가자.”
그러나 두 사람이 병실을 나서고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빠다... 아니, 아저씨다. 아저씨가 우리 데리러 왔나 봐요!”
하은서는 자기도 모르게 아빠라고 불렀다가 곧 아저씨로 정정하며 반가움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은서가 손을 놓으려 하자 심예원은 그 손을 꼭 움켜쥐었다.
하도겸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았고 찡그린 미간 아래 눈빛이 흔들렸다.
“유준아, 괜찮아?”
소혜진이 다그치듯 묻자 소유준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까졌어요.”
하도겸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고 심예원과 하은서를 향해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소혜진과 그녀의 아이에게만 향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예원은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설령 하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그의 마음은 그저 잔잔한 수면처럼 아무런 파문도 없이 고요할 것이라는 걸 이제는 너무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은서야...”
눈가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하은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우리 이제 집에 가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하은서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따금 조용히 흐느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은서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심예원은 그 문을 두드리지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은 채 말없이 문 앞에 서서 지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