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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황후의 측근을 후려치다

섭정왕의 심복 시위 이영이 정승 댁에 도착하자 하 정승이 몸소 나와 맞았다. 이영이 곧장 아뢰었다. “정승 대감, 섭정왕 마마의 명을 받들어 하지연 아씨를 입궁시키러 왔습니다.” 하 정승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 물었다. “섭정왕 마마께서 어찌 여식을 부르신단 말이오?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있겠소?” 이영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소인은 다만 명을 받들었을 뿐,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하 정승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근심을 드리우고 말했다. “허나 안됐게도 여식이 갑자기 병을 얻어 몸져누웠소. 지금은 입궁이 불가하니, 부디 그리 전해 주시오.” “병이라 하셨습니까?” 이영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정승 댁에서 이미 손을 쓴 것이로군.’ 하 정승은 얼굴을 슬프게 일그러뜨리며 거들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여식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하였소.” 이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건 분명 핑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아씨를 뵐 수 있겠습니까?” 하 정승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고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불가하오. 여식은 병중으로 내실에 있는데, 사내가 함부로 드나드는 것은 여식의 명예를 해치는 일이 아니겠소!” 이영은 입꼬리를 올렸다. ‘명예라... 이미 파혼하고 황후마마의 노까지 산 몸인지 온 장안이 다 아는 일인데 무슨 명예가 남았단 말인가.’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정승 대감의 말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섭정왕 마마의 명을 받들었습니다. 아씨를 직접 뵙기 전에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섭정왕의 심복 이영은 말을 잇는 와중에 덕양왕을 떠올렸다. ‘만약 하지연 아씨가 정말 화를 당했다면 덕양왕 마마께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우실 것이다.’ 섭정왕과 덕양왕의 깊은 정을 아는 그는 하지연을 확인하기 전까지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살아 있든, 싸늘한 시신이 됐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하 정승은 점점 불쾌해졌다. ‘어찌 이리 말이 통하지 않는가! 섭정왕의 심복이라 하여 이 나라 정승인 내가 몸소 나와 맞아주었거늘, 그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체면을 세워준 일이다. 그런데도 기어코 물러서지 않겠단 말인가.’ 그는 손을 내저으며 이영의 말을 끊었다. “그만 돌아가시오. 내일 섭정왕 마마를 뵐 적에 본 정승이 친히 사정을 아뢸 것이오.”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찰나 이영이 발을 옮겨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영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감, 오늘 아씨를 뵙지 못한다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정말 병이 위중하다면 제가 섭정왕 마마께 아뢰어 어의를 불러 진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 정승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 “도를 넘지 마시오! 의원이 이미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였소. 이 아비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더는 들추지 마시오.” 그러자 이영이 맞받았다. “의원이 그토록 병세가 위중하다 하였다면 제가 어의를 모셔 와 치료를 도모하겠다 하는데 기뻐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어찌 그것이 대감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는 일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수년간 섭정왕 곁에서 온갖 풍파를 겪었으나 이토록 파렴치한 자는 드물었다. ‘더욱이 지연 아씨는 장차 섭정왕 마마의 왕비가 될 몸이다. 지금은 미움을 사고 있더라도 그녀의 생사여탈은 오직 섭정왕 마마만이 가를 수 있는 일이다.’ “무슨 소란이냐! 도대체들 무얼 그리 떠들썩하단 말이냐!” 하 정승 댁 대부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위엄을 풍기며 걸어 나왔다. 조금 전 문지기가 섭정왕의 측근이 하지연을 찾는다 아뢰었을 때 정승 댁 대부인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대청 깊숙이 숨어 기척을 엿들으며 사정을 살피다가 이영이 하 정승과 팽팽히 맞서는 기세를 보이자 그제야 자리를 박차고 나선 것이었다. 이영 또한 정승 댁 대부인의 위세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몸가짐을 신중히 하고 조심스레 예를 올렸다. “이영이 정승 댁 대부인께 문안 올립니다.” “이영이라 하였느냐?” 대부인은 의자에 느긋이 앉아 위압이 서린 눈길로 그를 곧추 눌러보았다. “웬 잡것이 굴러들어 온 것이냐.” “대부인, 소인은 섭정왕 마마 곁을 모시는 시위입니다.” 이영은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지도 교만하게 굴지도 않고 담담히 신분을 밝혔다. “시위라 하였느냐?” 하 정승 댁 대부인의 음성은 한층 차가워졌다. “결국은 종놈이 아니더냐. 그렇다면 종놈의 예로 절부터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영의 표정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대부인, 소인은 황제 폐하께서 친히 정삼품 벼슬을 내린 호위 무사입니다. 천한 종이 아니 온즉 종의 예로 뵐 까닭은 없습니다.” “허어!” 대부인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품계를 달고 있으니 그리 거만한 것이로구나. 듣자 하니 당대의 정승조차 눈에 두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 기세가 마치 섭정왕 마마인 듯하다.” 이영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혹시 소인의 말이 거슬렸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지요. 다만 정승 댁 아씨를 잠시 뵐 수 있다면 소인이 돌아가 섭정왕 마마께 명확히 아뢸 수 있을 것입니다.” 하 정승댁 대부인은 콧소리를 내뱉으며 비웃었다. “젊은 놈이 귀는 멀쩡하다면서 어찌 이리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냐. 정승의 여식은 이미 병석에 누웠다 하지 않았느냐! 돌아가 섭정왕께 그대로 전하거라. 만약 노하신다면 이 늙은 몸이 친히 나아가 사죄하면 그만이다.” 이어 대청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백천아, 손님을 내보내라!” 문 뒤에 있던 하백천이 음울한 기색으로 들어서며 이영을 향해 말했다. “이 시위, 어서 나가시오.” 이영은 속으로 이미 하지연의 안위가 위태롭다 짐작했으나 이 자리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읍한 뒤 차분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그대로 섭정왕 마마께 아뢰겠습니다.” 그는 곧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때 비아냥 섞인 대부인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하찮은 시위 주제에 감히 정승 댁에서 날뛰다니. 주인이 어떤 자인지 하인을 보면 알지.” 그 말은 분명 이영의 귀에 들리라는 것이었다. 섭정왕이 집권한 뒤 정승 세력이 꺾인 것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서려 있었다. 이영은 비웃음을 흘렸으나 대꾸하지 않고 큰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하 정승은 안색이 어두워져 대부인을 향해 염려를 토로했다. “어머니, 이리 대놓고 무례히 굴면 섭정왕께서 추후 문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문책이라니?” 대부인의 눈매가 단호해졌다. “네놈은 늘 겁이 많아 큰일을 그르칠까 두렵구나. 지연이 그 계집은 이미 독이 든 술을 마셨다. 차가운 시체를 보여줄 것이냐. 내일쯤 ‘중병으로 숨졌다’고 전하면 자연스레 장례를 치를 수 있을 터다.” 하 정승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허나 섭정왕께서 굳이 사람을 보내 지연을 궁으로 들이라 명하신 것은... 혹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부인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무슨 뜻이 있겠느냐. 섭정왕과 황후는 원래도 틀어져 있지 않았느냐. 황후가 그 계집을 죽이려 드니, 섭정왕이 오기로 막아보려는 것이야. 그저 황후의 속을 뒤틀리게 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하 정승 댁 대부인이 말을 막 끝낸 참에 이영을 내보내던 하백천이 급히 대청으로 달려왔다. “대부인, 대감! 바깥에 상궁 하나가 와 있습니다. 황후마마의 친필 교지를 받들어 아씨를 즉시 입궁시키라는 전갈을 전한다고 합니다.” 대부인은 비웃듯 냉소를 흘렸다. “허, 보아하니 섭정왕이 꾀를 내어 손을 쓴 것이로구나. 이영이 막 나간 뒤 곧장 황후마마의 교지를 받들었다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다니, 이는 섭정왕이 황후와 끝까지 맞서겠다는 뜻이 아니더냐. 이번만은 우리가 황후의 편에 서서 황후의 눈에 들어야 하리라.” 하 정승은 얼굴을 굳히며 냉엄히 명했다. “허튼수작이니라! 황후마마가 아니라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든다 해도 모조리 내쫓거라!” “예, 대감!” 하백천이 곧장 명을 받들고 나갔다. 그 시각, 황후의 심복 양 상궁은 황후의 친필 교지를 손에 쥔 채 정승 댁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본 상궁이 황후마마의 친필 교지를 가지고 왔건만 정승 댁 문지기라는 자가 감히 문밖에 세워두다니... 정승 댁이 언제부터 이리 오만해졌단 말인가.’ 잠시 뒤 하백천이 모습을 드러내자 양 상궁이 준엄히 꾸짖었다. “아직도 더 전할 말이 남았단 말이냐? 황후마마의 친필 교지다. 지연 아씨를 즉시 입궁시켜 뵙게 하라!” 그러나 하백천은 비웃으며 대꾸했다. “황후마마의 명이라면 감히 거역하지 않으리라. 허나 황후마마의 측근이라 꾸미는 자라면 그 죄는 죽음으로도 갚기 어려우리라.” 그가 손을 내젓자 두 명의 장정이 달려들어 양 상궁의 팔을 비틀어 잡아끌었다. 양 상궁은 분노에 치를 떨며 소리쳤다. “정승 댁이 감히 황후의 상궁을 능멸하다니! 이는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백천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네깟 계집이 황후마마의 상궁이라 칭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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