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는 청심과 함께 정처 없이 성안을 거닐었다.
이곳은 천림성이라 불리며 중간 지역 다섯 개 성 가운데서 도성이었다.
자객으로 활동할 때는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다. 주상전하가 계신 곳이라 임무 등급이 더 높아 내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림성이 번화하다는 말을 늘 들어왔다. 당시에는 다만 동경할 뿐 언젠가 내가 자유로워진다면 천림성에 작은 집 한 채를 사서 여생을 보내리라 꿈꾸었었다.
하지만 나는 지체 높은 안성대군의 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또 소민주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반드시 네 집을 찾아라. 네가 온 곳을 찾아야 한다.”
‘언니, 저는 집을 찾았지만 어찌하여 기쁘지 않은 겁니까?’
어디선가 갑자기 아이 몇몇이 튀어나와 청심을 밀어 넘어뜨리고는 청심의 손에 든 물건을 빼앗아 달아났다.
나는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으며 소리쳤다.
“멈춰라!”
선두에 서 있던 아이가 내 던진 것에 맞고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다른 아이들이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나와 청심은 이미 그들 앞에 다가섰다.
“어찌하여 물건을 빼앗느냐?”
청심이 화를 내며 물었다.
바닥에서 일어난 어린 남자아이가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말했다.
“당신의 물건을 빼앗았으니 어찌할 것입니까?”
내가 비수를 꺼내자 칼날이 시퍼런 빛을 반짝였다.
“다시 묻겠다. 왜 물건을 빼앗았느냐?”
그는 목을 움츠리며 겁먹은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것은 당신들 손에 들린 물건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서 빼앗았습니다. 며칠 굶다 보니 배가 고파 한 번 시도해봤어요.”
청심의 손에는 내가 담아두라고 했던 그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원래는 나가서 들개나 길고양이들이라도 있으면 나누어 주려 했으나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비수를 거두고 청심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게 했다.
그들은 우리가 악의가 없음을 확인하자 물건을 품에 안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와 청심은 그 뒤를 따랐고 결국 버려진 극장으로 이어졌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노인과 어린아이는 물론 병든 사람까지 있었는데 모두 얼굴이 누렇고 말라 있었으며 누더기 옷을 걸쳤다.
우리를 보자 그들은 놀란 사슴처럼 몸을 움츠렸다.
청심이 놀라 외쳤다.
“어찌하여 천림성에 이런 곳이 있단 말입니까?’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천림성에는 돈 많은 이들이 많아서 거지조차 없을 줄 알았는데...
그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사람들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청심도 나를 찾아왔다.
“아씨, 이것은 마님께서 제게 하사하신 장신구입니다. 이것을 팔아 돈을 마련하여 극장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주고 싶다.”
청심은 나의 어머니가 밖으로 나갔을 때 구해온 아이였다.
그때 청심은 나이가 어렸고 뼈만 남을 정도로 비쩍 마른 채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를 따른 뒤에야 비로소 굶주리며 떠돌아다니던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극장의 사람들을 보자 그녀는 깊은 감회를 느꼈다.
“청심아, 어머니께서 네게 남겨주신 물건은 잘 간직하고 있거라. 저녁에 다시 극장으로 가보자꾸나.”
나는 이제 영락궁의 옹주가 되었으니 그 사람들을 도우려고 시녀의 장신구를 팔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대문으로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왔다.
“언니, 제가 보러 왔어요!”
안양 옹주 민자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잠자코 바라보았다. 민자희는 안으로 들어오더니 시녀를 시켜 음식 상자를 가져오게 한 후 그 안에서 국 한 그릇을 꺼냈다.
“언니, 이것은 제가 밖에서 잡은 비둘기예요. 비둘기가 몸에 좋다고 하더군요. 밖에서 오랫동안 떠돌며 고생이 많았을 텐데 어서 이 국을 드시고 몸보신하세요.”
‘혹시 아씨가 밖에서 돌아왔다고 비둘기에 비교한 건가? 옛말에 비둘기가 까치 집을 차지한다고 했는데 그럼...’
청심은 그녀의 말 속에 숨겨진 속내를 알아차리고 즉시 불쾌함을 드러냈다.
“옹주마마, 대군마마께서 저희 아씨께 귀한 인삼과 제비집을 많이 준비해 주셨습니다. 옹주마마의 꿩 곰탕은 아마 감당이 안 될 것이니 차라리 옹주마마께서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민자희의 심복 시녀가 즉시 불만을 터뜨렸다.
“방자하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느냐? 누구를 믿고 옹주마마께 그리 말하다니.”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녀는 청심에게 달려들어 뺨을 때리려 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쌀쌀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넌 누구를 믿고 감히 내 뜰에서 위세를 부리는 것이냐?”
내가 힘껏 밀치자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까까지 옆에서 흥미롭게 구경하던 민자희는 갑자기 눈을 깜빡이더니 애써 눈물을 짜냈다.
그녀는 시녀 옆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들고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언니, 제가 언니를 위해 마음 써서 꿩 곰탕을 가져왔는데 언니는 고마워하지도 않고 저를 때리네요. 자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그때 민지유의 목소리가 뜰 안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길래 그리 울고 있느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민자희를 보자 그녀는 급히 달려가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 언니께서 자희를 싫어하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가져온 보신탕도 사양하고 제 시녀까지 때렸습니다.”
그녀는 민지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며 말했다.
민지유는 즉시 얼굴을 굳히며 나를 꾸짖었다.
“화연아, 네가 어찌 그러느냐? 자희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리 대하면 안 되지. 네 아버지께서 어제 너를 소홀히 대한 것이 걱정스러워 나를 시켜 너를 돌보라 했는데 너는 너무 제멋대로구나. 이 일은 꼭 네 아버지께 이를 것이다.”
말을 마치고 그녀는 민자희와 손을 잡고 떠났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이없어 웃음만 나왔다.
‘민자희, 참으로 초라한 수단을 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