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김신우는 말을 마친 후 나의 얼굴에 부드럽게 뽀뽀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결혼한 지 3년 차, 나는 카나리아처럼 김신우가 만든 조롱 속에 갇혀 살았다.
나는 매달 2억 원이 넘는 신용카드만 통제할 수 있었을 뿐, 그 외의 것은 이미 오래전에 나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김신우의 말에 대답했다.
“알았어. 당신이 알아서 해.”
김신우는 나의 평소와 다름없는 고분고분하고 온순한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몸을 살짝 돌려 백미러를 통해 운전 중인 경호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석아, 이제 병원에 도착하면 형수님을 잘 지켜야 해.”
지석은 백미러를 통해 김신우와 눈빛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몇 초 후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빛 뒤에 담긴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양심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죄책감일 것이다.
차는 곧 성원시 제일 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병원으로 문 앞에는 일반 시민 외에 기자가 가득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지석과 김신우는 내 앞에 막아서서 지켜주었지만 두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석은 인파 속에서 쓰러졌다. 지석이 넘어지자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가 순식간에 내 얼굴을 향했다.
“사모님, 실례지만 생일날 납치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날 옷차림이 노출이 너무 심해서 납치범들의 주의를 끈 것 아닙니까?”
“사모님, 김 대표님께서 아까 범인들이 사모님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몸의 상처를 보면 다들 짐작할 겁니다. 혹시 대표님께서 보호 차원에서 거짓말하신 건가요?”
“사모님, 이 일로 대표님과의 혼인 관계에 변화가 있을 거로 생각하십니까?”
“사모님, 만약 이 일이 지난 후에도 대표님께서 여전히 사모님을 사랑한다면 그건 정말 은혜가 아닌가요? 사모님은 평생 이 은혜를 갚지 못할 거예요. 사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말들은 칼날처럼 내 마음에 박혔다.
나는 앞에서 나를 지키려는 듯 애쓰는 김신우를 바라보며 차 안에서 그가 지석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잘 살자고 약속했던 이 남자가 내 인생 가장 큰 풍파를 안겨주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주인이 없는 떠돌아다니는 강아지처럼 인파 속에 웅크린 채 기자들의 발이 내 옷과 몸을 짓밟도록 내버려 두었다.
“지석아, 뭐 하는 거야?”
김신우의 호통과 함께 지석은 마침내 인파 속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이 호흡이 정말 잘 맞네.’
나는 김신우와 함께 수없이 이런 기자들을 상대해 왔기에 이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기자들은 원하는 장면을 다 찍어 놨을 것이다. 내가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기자들의 펜은 김신우가 원하는 답을 적어낼 테니.
정조를 지키지 못한 재벌가 부인과 순정파 재벌 대표님, 언론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 아닌가.
기자들은 당연히 김신우의 심기를 건드릴 용기가 없었다. 김신우가 호통치자 기자들은 천천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김신우는 즉시 앞으로 다가와 바닥에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내 몸에 묻은 더러운 것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자기야, 그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마. 이런 일이 있었으니 나는 오히려 널 더 사랑할 거야.”
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지석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