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지석아, 차 안에서 형수님을 잘 지켜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고향으로 썩 돌아가. 내 앞에서 알른거리지 말고. 쓸모없는 놈!”
‘정말 연기력이 뛰어나네.’
병원 안에는 김신우가 미리 불러둔 전문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나를 진료실로 데려가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몇 시간 후 임경석은 김신우만 방에 남겨두었다.
지석이 수납하러 간 틈을 타 나는 문 앞에 서서 임경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궁이 이미 손상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원래 임신 중이셨는데... 유감스럽게도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정신과 전문의 말로는 사모님께서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생기셨답니다. 자꾸 혼잣말하시고 낯선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신다고요. 이것은 이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상태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신 후에는 가능한 한 여론을 통제해서 부인께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김씨 가문이라면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뒤의 말은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고가 났을 때 나는 이미 임신 중이었다니...
나는 평평한 배를 쓰다듬었다.
알고 보니 김신우는 나에게 상처만 준 것이 아니라 내 아이까지 죽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병원 복도로 달려갔지만 다리가 풀려 복도에 쓰러졌다.
몇 분 후 복도에서 지석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우 형, 형님의 소원대로 형수님은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어요. 하지만... 형수님의 배속에 이미 아이가 있었네요. 우리 손에 또 하나의 목숨이 죽었으니 정말... 죄가 대단하네요.”
김신우는 한참 동안 지석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 후 지석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리고 신우 형, 임경석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기자들... 우리... 계속 언론에 보도해야 합니까?”
“내보내.”
말을 마친 후 두 사람은 떠났다.
마음이 차분해진 후 나는 휴대폰을 꺼내 반년 전 해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보낸 구직 제안을 찾아 ‘수락’ 버튼을 눌렀다.
몇 분 후 상대방으로부터 답장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 적힌 시간에 맞춰 나는 이틀 뒤 항공권을 예약했다.
사랑이 사라진 결혼은 결국 족쇄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머물 필요가 없었다.
항공권을 예약하자마자 김신우의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너머로 김신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어디 갔어? 한참을 찾아도 안 보여서 걱정했어.”
“나 병원 안이야. 잠깐 바람 쐬러 나왔어. 당신이 보이네.”
차에 타자마자 김신우는 나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자기야, 다시는 날 걱정시키지 마, 응?”
나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신우는 지석에게 차를 집으로 몰라고 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정원에서 꽃꽂이하는 나영심과 그 옆에서 거들고 있는 이여진을 보았다.
“자기야, 당신이 겪은 일 때문에 엄마가 걱정이 많으셨어. 너무 걱정되어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여기로 온 거야. 너도 알잖아. 여진이는 심리학을 전공했어. 엄마가 특별히 여진이를 불러 너랑 얘기해 보라고 했어.”
만약 나영심더러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나일 것이다.
그러니 나영심이 친절하게 나를 보러 올 리는 없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영심은 이여진의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멸과 역겨움이 가득했다.
“다른 남자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돌아올 낯짝이 있어? 차라리 밖에서 죽어버리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여진이한테 자리라도 비켜줄 수 있잖아.”
나영심의 말을 들은 김신우는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았다.
“어머니, 왜 또 그런 말을 하세요. 어머니는 입은 거칠어도 마음은 다정한 분이라는 걸 알아요. 하영이를 걱정하면 좀 따뜻하게 말해주셔야죠.”
나영심은 옷소매를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