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연락 두절이 된 것에 불만이 생긴 성준빈은 조현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조현희는 용기를 내어 성준빈의 눈빛을 마주했다.
“성 도련님이 나 같은 하찮은 잠자리 상대도 걱정하시나 보네?”
항상 고분고분 순종하던 조현희가 갑자기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자 다소 놀란 성준빈은 갑자기 반발심이 생긴 듯 조현희를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팔로 그녀의 허리를 꽉 조였다.
“잠자리 상대?”
“2년 동안 딱 한 번뿐인데 그걸 잠자리 상대라고 부르는 거야?”
조현희는 성준빈이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준빈이 조현희의 턱을 잡고 키스하려 할 때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빈 형, 여기 있었어? 수민 씨가 형 찾고 있어.”
살짝 눈살을 찌푸린 성준빈은 조현희의 손을 놓은 뒤 그 사람에게 말했다.
“알았어, 금방 갈게.”
조현희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성준빈에게 물었다.
“우리 언니를 알아?”
“어디 알 뿐이겠어? 두 사람이 사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인데.”
성준빈의 친구가 빈정대며 말했다.
“조현희, 깜짝 놀랄 준비나 해.”
두 사람이 멀리 떠난 후 조현희의 눈에 조소가 스쳤다.
이 사람들은 조현희가 아무것도 모른 채 있다가 화끈하게 모욕을 받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현희가 이미 마음 정리를 마치고 성준빈과 완전히 이별할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몰랐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때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비추더니 정장을 차려입은 성준빈과 흰색 드레스를 입은 채 성준빈의 팔짱을 낀 조수민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만면에 웃음을 띤 조병우는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첫째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수민을 환영하기 위함이고 둘째로 좋은 소식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조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대대로 교류해 온 사이로 몇 해 전에 수민이와 준빈이는 결혼하기로 집안끼리 정해 두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이 마음이 통하여 이달 말에 약혼식을 치르기로 했으니 그때는 꼭 참석해 주셔서 아이들의 행복을 함께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병우가 말을 마치자 성준빈의 친구들은 조현희의 멘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일제히 조현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조현희는 사람들 속에 조용히 서 있을 뿐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성준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본인과 조수민과의 관계를 조현희가 알게 되면 반드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너무나도 차분했다.
성준빈은 마음속에 이유 모를 불안감이 치솟았다. 조수민 또한 성준빈의 이상함을 예리하게 눈치채고 서둘러 물었다.
“준빈 씨, 왜 그래?”
성준빈은 바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성준빈은 조현희가 자신을 정말 많이 좋아하기에 분명 슬퍼할 거라고 확신했다.
다만 억지로 버티고 있을 뿐일 것이다.
...
화장실로 간 조현희는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예전 성준빈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떠올리자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지난 2년 동안 성준빈이 딱 한 번만 건드렸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소중히 여겨서가 아니라 애초에 건드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히 아껴뒀던 첫날밤은 성준빈에게 있어 그저 조현희의 명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최고의 소재일 뿐이었다.
조현희가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조병우가 그녀를 불렀다.
“조현희, 이리 와서 네 형부한테 인사해.”
성준빈 앞으로 걸어간 조현희는 적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형부, 안녕하세요.”
‘형부’라는 말에 성준빈의 안색이 굳어졌다.
한편 조수민은 아주 자연스럽게 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희야, 방금 준빈 씨에게서 들었어. 준빈 씨가 너희 학교 이사라며? 정말 우연이네.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네 형부한테 도움 청해도 돼, 어차피 다 한 가족이니까.”
이를 꽉 깨문 조현희는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형부한테 폐 안 끼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준빈의 표정을 보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남자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폭풍우보다 더 날카롭고 싸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인사 몇 마디를 나눈 후 조현희가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조수민이 다가와 그녀의 팔짱을 끼며 일부러 친한 척했다.
“현희야, 우리 오랜만이잖아. 할 말이 산더미야.”
그러고는 조현희를 데리고 억지로 휴게실로 끌고 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조금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조수민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조현희, 네가 준빈 씨와 잤다는 소문 다 들었어, 영상도 여기저기 퍼졌다면서? 이런 추잡한 수법으로 준빈 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솔직히 말해줄게, 준빈 씨는 너를 좋아하지도 않아. 아니, 아주 싫어하지! 네 엄마가 불륜녀라는 소문도 내가 준빈 씨더러 퍼트리라고 한 거야, 너에게 고백하라고 한 것도 내가 시킨 거고. 네가 조금씩 이 남자에게 빠졌다가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