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송해인은 속상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동안 아이들이 낯을 가려서 그녀와 거리를 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괜히 거짓말을 해가며 따라오지 말라고 한 건가 싶었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기다린 건 그녀가 아니라 임지영과의 나들이였다.
셋이서 말을 맞춰 그녀를 속이고 있었다니...
송해인은 부서질 듯한 마음을 붙잡고 눈앞의 광경을 끝까지 지켜봤다.
“아빠, 이거 먹어봐요!”
한진희는 통화 중인 한은찬의 팔을 잡아당기며 까치발을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달콤한 건 원래 취향이 아니었지만 딸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던 한은찬은 고개를 숙여 한 입 맛을 봤다.
곧이어 한진희는 아이스크림을 임지영에게 건넸다.
임지영은 한은찬을 한번 바라보더니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는 수줍은 얼굴로 방금 그가 먹은 자리에 입을 댔다.
“...”
그 광경에 송해인의 속은 벌컥 뒤집혔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한은찬도 그 장면을 똑똑히 봤다.
그는 임지영의 눈빛을 받아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임지영은 또 자기 손에 들린 반쯤 마신 음료를 한은찬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애교 섞인 눈빛을 보냈다.
한은찬은 차마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그녀가 쓰던 빨대를 그대로 입에 물었다.
“...”
송해인은 한은찬의 얼굴에서 이렇게 온화하고 너그러운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그가 결벽에 가까운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연애를 처음 시작했을 때, 송해인은 목이 말라 한은찬의 음료를 한 모금 뺏어 마셨는데 그때만 해도 한은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가정교육과 교양 때문에 불쾌한 행동을 대놓고 지적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은찬은 그 음료에 다시는 손대지 않았다.
송해인은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펴냈다. 손바닥에는 벌써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결벽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송해인은 한은찬이 기꺼이 예외를 허락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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