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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집에 돌아오자마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화면을 켜자 한 장의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사진 속 하승주는 상체를 드러낸 채 카메라를 등졌고 서지우는 어깨가 드러나는 머메이드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의 허리를 두 다리로 감고 있었다. 치맛자락은 허리까지 올라가 있었으며 자세는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곧이어 영상 하나가 또 도착했다. 영상 속에는 얼굴에 홍조를 띤 서지우가 하승주의 목에 팔을 감은 채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표님, 오늘 막 도착한 웨딩드레스인데 다 찢어졌잖아요.” 하승주는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서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한테 보여주려고 입은 거 아니야? 네가 원하는 대로 서연이 드레스를 만든 그 디자이너에게 네 것도 만들게 했잖아. 그럼 오늘 밤엔 너도 내가 원하는 거 들어줄 수 있겠지?” 서지우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고 영상은 그 장면에서 뚝 끊겼다.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메시지 하나를 더 보냈다. [아, 맞다. 안서연 씨는 귀가 안 들리죠? 깜빡했네요. 다음엔 영상에 자막도 꼭 넣을게요.] 안서연은 휴대폰을 움켜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주어 잡고 있었다. 눈물은 이미 멈출 수 없이 굵은 방울로 떨어져 땅을 적시고 있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정말 반으로 가를 수 있나? 두 명의 여자를 위해 똑같은 디자이너에게 웨딩드레스를 주문하다니. 하승주, 이게 네가 말한 사랑이란 거니?’ 그런 사랑은 그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는 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통을 억지로 삼키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려 했지만 손가락에 끼워진 약혼반지가 그녀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안서연은 그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빼내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반지는 하승주가 직접 디자이너에게 배워가며 스케치하고 공방에서 망치로 두드려 만든, 온전히 그의 손에서 탄생한 반지였다. 그는 청혼할 때 말했다. “내 손으로 만든 반지여야 의미가 있어. 이걸 만질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느껴지게 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의 마음은 변해버렸다. 그렇다면 그 반지 역시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밤이 깊어질 무렵, 하승주가 집에 돌아왔다. 그가 침대에 몸을 기대자 매캐한 향수 냄새에 섞인 익숙한 꽃향기가 안서연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영상 속 두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욕실로 달려가 구토했다. 하승주는 다급하게 따라와 걱정하며 의사를 부르려 했다. “서연아, 오늘 뭐 잘못 먹었어? 내가 바로 의사 불러줄게!” 안서연은 붉어진 눈으로 그의 손을 막았다. “괜찮아, 그냥 좀 역겨운 영상이랑 사진이 생각난 것뿐이야.”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그런 거 다음부턴 보지 마. 네가 힘들면 나도 너무 힘들어.” 하승주는 수화로는 부족할까 봐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팍 위에 올렸다. 하승주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안서연은 무심결에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그의 셔츠 단추 사이로 보이는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구토가 올라왔다. ‘다른 여자가 남긴 흔적을 그대로 지닌 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내 앞에서 사랑을 속삭이다니. 하승주는 낯은 도대체 얼마나 두꺼운 거야?’ 그녀가 또다시 구토하자 그는 더더욱 다급해졌다. “도대체 누가 그딴 걸 보냈길래 우리 서연이가 이 지경이 된 거야? 내가 꼭 가만 안 둬!” 안서연은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하승주, 날 이 꼴로 만든 건 바로 너야.’ 그녀는 더는 이 위선적인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안서연은 그를 밖으로 밀어내고 방문을 잠갔다. “오늘 밤은 혼자 있고 싶어.” 문밖에선 하승주의 다급한 외침이 계속 들려왔지만 안서연은 못 들은 척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안서연은 영상 속 하승주의 그 음흉한 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승주와 연애를 시작한 뒤 그는 안서연에게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사랑을 보여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땐 그가 자신의 구원이자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는 그녀를 가장 깊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 악마에 불과했다. 절절하게 사랑했던 기억 위에 가장 잔인한 배신이 덧입혀졌다. 안서연은 눈을 감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녀는 처음부터 하승주란 사람을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안서연이 문을 열자 하승주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서연아, 어젯밤 왜 나 쫓아냈어? 혹시 내가 너 혼자 두고 가서 화난 거야? 정말 급한 일이었어. 용서해 줘, 응?” ‘급한 일? 서지우랑 침대에서 뒹구는 것도 급한 일이겠지.’ 안서연은 그의 거짓말을 굳이 들추지 않았다. 8일 후면 그녀는 그를 떠난다. 그때가 되면 하승주도 그녀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 안 났어. 일이 중요하니까, 이해해.” 그녀의 차분한 말투에 하승주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아니야! 내게 제일 중요한 건 너야. 앞으로 절대 너 혼자 두지 않을게.” 그는 다급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를 뼛속까지 끌어안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안서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들 사이엔 더 이상 ‘앞으로’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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