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심가연은 방황이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고 구진성을 바라보는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구진성 씨.” 말이 끝나자 심가연은 구진성에게 머리를 조아리려 했고 깜짝 놀란 구진성은 황급히 한발 물러나더니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심가연을 부축했다. 구진성이 따뜻하고 단단한 손바닥으로 심가연의 어깨를 받쳐주는 순간, 심가연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자 심가연은 구진성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용연향을 느꼈고 그 향은 묘하게 심가연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일어나요.” 구진성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 “감사하고 싶다면 민수에게 하는 게 맞아요.” 심가연은 고개를 들어 구진성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고 공기 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엄마...” 그때, 구진성의 품에 있던 구재호가 작은 손을 흔들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심가연을 불렀고 이 미묘한 분위기는 단번에 깨졌다. 눈가가 뜨거워진 심가연은 본능적으로 아이를 안으려다가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서둘러 손을 거두며 애써 서운한 감정을 감추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작은 도련님이 부르는 엄마라는 호칭은 그냥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심가연이 눈물을 삼키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모습을 보자 구진성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그건 재호가 정말 심가연 씨를 좋아해서겠죠.” 그 말에 심가연의 입술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심가연이 구재호의 볼을 살짝 쓰다듬자 작은 녀석은 금세 심가연의 손가락을 붙잡아 입에 가져가며 깔깔 웃었다. 그러나 구진성은 이내 원래의 냉랭한 태도로 돌아왔다. “이제 떠날 때가 됐어요.” 심가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마지막으로 구재호를 바라보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심가연이 침실을 나서자 구진성의 품에 안긴 구재호는 사랑하는 엄마가 사라진 걸 느낀 듯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구진성은 아이를 안아 창가로 데려가며 조용히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