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그 소식은 벼락처럼 임다영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겨우 며칠 비웠을 뿐인데... 보육원에 무슨 일이 난 거야? 그런데 지금 나는 연시윤 때문에 갇혀 있잖아. 어떻게 나가지?’
“네, 금방 갈게요!”
그녀는 병원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끊고 곧장 별장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관 앞에 선 경호원이 길을 가로막았다.
“나가시면 안 됩니다.”
“저... 병원에 가야 해요!”
임다영은 숨이 턱까지 차오른 목소리로 외쳤다.
“저한테 아주 중요한 분이 크게 다쳤어요. 당장 가서 곁을 지켜야 해요!”
경호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가족입니까?”
“네, 제게는... 정말 소중한 가족이에요.”
그가 잠시 사실확인을 위해 통화를 마치고 차갑게 말했다.
“다영 씨 가족분들은 집에 멀쩡히 계시다네요.”
“그 사람들이 아니에요. 저한테는 그 사람들보다...”
설명을 이어가려던 임다영은 말끝을 삼켰다.
“비켜요!”
그녀는 몸을 밀치고 나가려 했지만, 곧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방 안으로 밀려났다.
“연시윤, 이 개자식!”
텅 빈 방 안에서 발을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이 눈앞에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때,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담벼락 옆의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오, 저거다!’
십여 분 후, 찢어 만든 침대 시트를 창문에 묶은 임다영은 그걸 타고 정원으로 내려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나무에 매달려 한 발씩 기어올라 마침내 담 위에 올라섰다.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뛰어내렸다.
온몸이 긁히고 찢긴 듯 아팠지만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길가로 나와 손을 흔들어 지나가던 택시를 세웠다.
“기사님, 저...”
바로 그 순간, 주머니 속 현금이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스쳤다.
“아가씨, 어디 가려고요?”
기사가 다급하게 재촉했다.
“아니, 타실 거면 빨리 타고, 아니면 비켜요.”
“죄송합니다... 안 탈게요.”
임다영이 뒷걸음질 치자, 택시는 욕이라도 하듯 경적을 울리고 떠났다.
남은 건 주머니 속에서 더듬어낸 동전 몇 개뿐이었던 그녀는 상처 난 다리를 질질 끌며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임다영은 접수 창구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민지영 환자 찾습니다.”
“보호자세요?”
“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고비를 넘기셨고요, 3398호실에 계십니다.”
임다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발길을 옮기려는데, 간호사가 다시 불렀다.
“잠시만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머리를 다치셔서 정밀 검사했는데, 뇌종양이 발견됐어요.”
“뭐라고요? 종양이요? 혹시... 악성인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히 양성이예요. 다만 위치가 깊어서 일반 수술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뇌신경 전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 같아요.”
임다영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럼... 수술은 할 수 있는 건가요?”
간호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치료비를 말했다.
“아마 최소 2천만 원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임다영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느새 숨이 가빠지고 생각은 뒤죽박죽이었다.
임다영은 민지영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고 틈만 나면 보육원 일을 도와왔다.
그렇기에 이곳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사랑보육원은 겉으로는 임씨 가문이 ‘선행’으로 지은 곳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들은 운영에는 손도 안 댔고 외부에서 기부금이 들어와도 그 돈은 죄다 임씨 가문 금고로 들어갔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항상 찬물에 식은 찐빵과 짠 반찬이 전부였다.
자식도 없는 민지영은 아이들을 안쓰럽게 여겨 자기 월급까지 보태며 살림을 꾸렸다. 그마저도 모자라 빚까지 진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2천만 원 수술비라니... 어디서 구해.’
임다영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의식이 돌아온 민지영을 보았다.
“다영아, 네가 어떻게...”
민지영은 힘없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안도와 놀람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하늘이 도왔어. 내가 이렇게 살아있으니... 다행이지. 나 아니었으면 그 애들은 어쩌고...”
그 목소리 속에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기쁨과 남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임다영은 속으로도 똑같이 물었다.
‘맞아요. 이모가 없으면, 그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민지영은 그녀에게 친부모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었다. 그녀가 위험에 놓였는데, 두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병이 언제 나을지 모르겠네. 또 돈이 많이 들 거야.”
민지영이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요. 반드시 나을 거예요.”
임다영은 손을 꼭 잡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제가 마련할게요.”
“혹시 임씨 가문에 손 벌리는 거니?”
민지영은 사정을 모르는 채,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니에요. 다른 방법이 있어요.”
임다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모, 기다리세요. 제가 꼭 다시 올게요.”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연시윤... 계약서에 따르면 3개월 뒤 200억 원을 받게 되어 있어. 그 전에 일부만이라도 당겨서 이모 수술비로 쓰면 되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민지영의 치료를 미룰 수는 없었기에 당장 연시윤을 찾아가야 했다.
휴대폰을 꺼내 그의 회사 주소를 검색하던 중, 모퉁이를 돌다 그만 누군가와 부딪쳤다.
“쿵!”
“아야!”
임다영은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눈 달고 다니는 거야, 뭐야? 길 좀 똑바로 보고 걸어!”
그 소리에 움찔해 고개를 든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임다영과 부딪힌 건 다름 아닌...